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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최수혁]무상급식 확대가 불러올 교육재앙

입력 | 2012-11-13 03:00:00


최수혁 서울 영도중 교장 서울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

서울시교육청은 무상급식 확대로 다른 교육예산을 대폭 축소한 내년도 예산을 확정했다.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2527억 원 늘어난 7조3689억 원으로 편성했지만 시설사업비는 전년 대비 약 2300억 원, 환경개선비는 약 40억 원 줄었다. 특히 장애편의시설과 급식환경사업은 지난해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무상급식 확대가 결국 교육재앙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낡은 교실-화장실, 예산 없어 못 고쳐

이 같은 예산편성에 대해 교육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무상급식 못지않게 학교시설 개선이 시급하지만 예산부족의 벽에 부닥쳐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초중고교 교실은 비가 새서 문제 되는 곳이 많다. 냉난방 및 통풍시설 등이 너무 낡거나 고장 나 학생들이 더위와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학교도 있다. 화장실은 또 어떤가. 낙후된 데다 관리도 안 돼 화장실 공포 때문에 변비 걸리는 아이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듯 돈이 필요한 곳이 넘쳐나지만 이를 위한 예산은 없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온다. 열악한 환경은 건강과 학업을 위협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육계 일각에선 학생들에게 쾌적한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추진되다가 2000년 만료됐던 ‘교육환경개선특별회계(환특회계)’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라이언스(J B Lyons)라는 미국의 교육학자는 학교시설이 학생 교육에 미친 영향 분석 연구(2001년)에서 안전하고 쾌적한 시설의 현대식 학교는 학생의 학습을 고취시키지만 오래된 건물들은 학습과정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좋은 건물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5∼17% 학업 성취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보면,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의 학력 향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더욱이 무상급식을 지금처럼 유지하면 물가 및 인건비 상승, 수혜자의 요구 증가 등으로 앞으로도 예산증액을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서울시 교육이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을 줄 만한 환경요건을 갖추기란 당분간 요원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의 초중고교생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할 ‘환경 개선을 통한 학습 지원’을 장기간 받지 못하는 상태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과 비교하면 교실을 비롯해 도서관이나 급식시설 등 교육을 위한 기본 시설이 부끄러운 수준이다. 망국적인 사교육을 잠재워야 한다는 외침은 넘쳐나지만 이 같은 교육환경에서 공교육은 정상화될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시설투자 재정투자에 쓰던 비용을 깎아 무상급식 예산에 모두 밀어 넣겠다고 하니 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이 학생건강-학업 위협

무상급식은 이미 지난 몇 차례의 선거를 통해 유권자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이미 결정된 정책을 되돌리거나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예산이 급격히 증액돼 학생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을 쓰지 못하게 됐다면 우선순위를 따져 적절한 분배 비중을 정하는 노력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부적절한 학교 시설은 학생들의 건강에 해가 되고 사기를 저하시킨다. 이에 더해 교육 성과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교육청은 외면하면 안 된다. 성취도, 학교 적응, 건강, 안전성 및 보안 등 유무형의 환경적 요건을 구비한 ‘편안한’ 여건에서 공부하는 것은 학생들이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다. 무상급식 실시가 이런 학생들의 권리 보호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다.

최수혁 서울 영도중 교장 서울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