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혁 서울 영도중 교장 서울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
낡은 교실-화장실, 예산 없어 못 고쳐
이 같은 예산편성에 대해 교육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무상급식 못지않게 학교시설 개선이 시급하지만 예산부족의 벽에 부닥쳐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초중고교 교실은 비가 새서 문제 되는 곳이 많다. 냉난방 및 통풍시설 등이 너무 낡거나 고장 나 학생들이 더위와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학교도 있다. 화장실은 또 어떤가. 낙후된 데다 관리도 안 돼 화장실 공포 때문에 변비 걸리는 아이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듯 돈이 필요한 곳이 넘쳐나지만 이를 위한 예산은 없다.
라이언스(J B Lyons)라는 미국의 교육학자는 학교시설이 학생 교육에 미친 영향 분석 연구(2001년)에서 안전하고 쾌적한 시설의 현대식 학교는 학생의 학습을 고취시키지만 오래된 건물들은 학습과정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좋은 건물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5∼17% 학업 성취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보면,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의 학력 향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더욱이 무상급식을 지금처럼 유지하면 물가 및 인건비 상승, 수혜자의 요구 증가 등으로 앞으로도 예산증액을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서울시 교육이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을 줄 만한 환경요건을 갖추기란 당분간 요원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의 초중고교생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할 ‘환경 개선을 통한 학습 지원’을 장기간 받지 못하는 상태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과 비교하면 교실을 비롯해 도서관이나 급식시설 등 교육을 위한 기본 시설이 부끄러운 수준이다. 망국적인 사교육을 잠재워야 한다는 외침은 넘쳐나지만 이 같은 교육환경에서 공교육은 정상화될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시설투자 재정투자에 쓰던 비용을 깎아 무상급식 예산에 모두 밀어 넣겠다고 하니 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이 학생건강-학업 위협
부적절한 학교 시설은 학생들의 건강에 해가 되고 사기를 저하시킨다. 이에 더해 교육 성과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교육청은 외면하면 안 된다. 성취도, 학교 적응, 건강, 안전성 및 보안 등 유무형의 환경적 요건을 구비한 ‘편안한’ 여건에서 공부하는 것은 학생들이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다. 무상급식 실시가 이런 학생들의 권리 보호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다.
최수혁 서울 영도중 교장 서울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