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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강의실에 노트북 컴퓨터를 금(禁)하라

입력 | 2012-11-08 03:00:00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나는 이번 학기부터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노트북 컴퓨터(이하 랩톱) 사용을 금지했다. 디지털 시대를 역행하는 일은 아닌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1981년 세상에 나온 랩톱은 중요한 학습 도구이다. 대학생들에게 랩톱 소지는 거의 의무에 가깝다. 대학 등 모든 학교에서 랩톱의 인터넷 접속은 교실의 혁신이었다. 미래의 길을 위해 학교들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랩톱뿐 아니라 태블릿,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교육의 기회를 크게 늘릴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학생들 수업시간에 게임 등 ‘딴짓’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랩톱은 수업의 방해물이다. 학생들은 수업 중에 무선 접속 (wi-fi)으로 댓글을 달고 e메일을 검색하거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한다. 심지어 게임과 도박을 하거나 물건을 사고, 음란물을 보는 학생도 있다.

수업을 하다 보면 랩톱으로 ‘딴짓’하는 학생들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의심스러운 학생들을 일일이 경고하면 오히려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 수업 도구라는 랩톱 사용을 전면 금지할 명분은 무엇일까? 자칫 ‘디지털에 대한 항복’, ‘디지털에 대한 무한 숭배’라고까지 불리는 디지털 전지전능의 시대를 거스르는 낡은 사람이란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 해결의 실마리는 미국 대학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랩톱 원조국에서 랩톱 금지의 해답을 얻었으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벤틀리대는 1985년 미국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학생들의 랩톱 소지를 의무화한 곳이다. 그러나 랩톱의 부작용에 대한 교수들의 비판이 잇따르자 2001년 유선 인터넷 차단에 이어 2005년 교수들이 와이파이를 차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도록 했다.

하버드대 법대도 고민에 빠졌다. 2006년 랩톱 사용 금지를 위한 교수 투표까지 고려했다가 결국 교수들의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시카고대 법대는 2008년부터 강의실 와이파이 신호를 전면 차단했다. 이어 프린스턴, 펜실베이니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미국 대학 교수들의 ‘랩톱으로부터 자유로운 강의실’ 만들기는 갈수록 늘고 있다. 듀크대 ‘학부 연구소’ 소장인 레베카 베크 교수는 “랩톱 사용 제한은 미국 내에서 전국적 흐름”이라며 “나의 남편은 컴퓨터 과학 교수인데도 강의실에서 랩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이런 현상을 “교수들의 반란”이라고 묘사했다. 2010년 2월 오클라호마대의 한 물리학 교수가 디지털에 매몰된 학생들에 대한 경고로 랩톱에 액화질소를 부은 뒤 바닥에 팽개쳐 부수어 버린 것은 반란의 백미라 할 만하다.

왜 교수들이 이렇게까지 랩톱 반대론자가 되었을까. 그들은 현장 경험과 연구를 통해 개인의 교육 수단이 학생 자신을 방해함은 물론 다른 학생까지 방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첨단 교육 도구라 할지라도 학생들의 수업 집중을 분산시키며 창의력 증진, 사고력의 확장을 막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미국 위노나주립대 심리학 교수인 케리 프라이드의 2006년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은 랩톱으로 수업 시간의 25%를 강의 필기 아닌 ‘딴짓’을 하기 위해 썼다. 여기에 랩톱은 주위 학생들의 주의력까지 산만하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이는 남의 컴퓨터 화면에 정신이 쏠리는 후광(後光)효과 때문이다. 연구 결론은 랩톱은 학업 성취에 대단히 부정적 영향을 미쳐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랩톱을 사용하면 할수록 성적은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美대학 강의실서 랩톱 사용금지 확산

콜로라도대 다이앤 사이버 교수는 2010년 “랩톱을 사용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시험 성적 격차는 11점이었으며, 랩톱 중독에 빠진 학생들의 성적은 거의 수업에 오지 않은 학생들과 비슷했다”고 밝혔다. 조지타운대 데이비드 콜 교수는 “랩톱은 강의실의 토론을 없애고 있다. 강의는 학생과 교수의 두뇌 교감 없이, 단순히 교수의 노트가 그대로 학생 노트에 옮겨지는 과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랩톱이, 더디더라도 직접 필기를 하면서 내용을 이해하고 분석, 종합, 흡수하는 학생들의 능력을 앗아간다고 비판한다. 기술 혁신이 반드시 교육의 혁신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디지털과의 전쟁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교수들이 우리들 삶의 필수품을 뺏고 있다. 성인인 우리들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반발이 대부분이다. 2006년 멤피스대 법대 학생들은 미국변호사협회에 금지 철회를 청원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온라인을 하면서도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랩톱이 강의 집중도를 높인다는 스탠퍼드대 교수들의 연구도 있긴 하다. 교수들 중에도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랩톱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며 반대하는 이도 많다.

그러나 랩톱 제한은 이미 미국 대학의 대세가 되고 있다. 랩톱뿐 아니라 아이패드나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가 교육에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도 디지털 식민지가 돼 버린 학교와 사회에 대한 교육자들의 반성의 결과이다. 그동안 충분히 인터넷 경험을 했으므로 이제 한 발 물러서서 과연 인터넷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따져볼 시점이라는 인식의 발로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셰리 터클(과학기술사회학)은 지난해 “지금은 (인터넷에 관한) 회개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첨단 교육도구가 창의력 증진 막아

디지털 발명국의 이처럼 뼈저린 성찰은 우리 모두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지구상에서 온라인이 가장 발달했다는 한국의 대학과 사회는, 거칠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인터넷 문화가 학생들의 학업에까지 침범하고 있음을 얼마나 알려고 했으며 알고 있는가? 또 디지털 기기가 삶을 혁명했으나 그것이 우리들 삶의 중요한 부분을 얼마나 앗아 가고 있는지에 대해 어떤 논의나 대처를 한 적이 있는가? 2015년까지 2조2800억 원을 들여 태블릿 교과서 등 스마트 교육을 완성하겠다는 우리 정부는 과연 얼마나 진지한 토론과 연구를 했는가?

디지털 늪에 깊이 빠져 버린 우리 교육, 우리 학생들을 구해 내야 할 때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