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보컬 김형미 씨는 “옛 노래의 좋은 가사와 선율을 살리기 위해 맑은 음색으로 불렀는데 재즈 특유의 기교와 즉흥성을 절제하는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팍재즈 제공
애잔하게 깔리는 현악과 피아노의 우울한 타건을 배경으로 여성의 맑게 절제된 목소리가 흐른다. 재즈 보컬 김형미 씨(37)가 최근 낸 2집 앨범 ‘가고파’에 수록된 ‘한계령’이다. 김 씨는 지난해 10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다 실종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의 고종사촌동생이다.
“처음부터 추모 곡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노래가 좋아 연습했는데 부르면서 그분 이미지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박 대장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해 9월 추석 연휴.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본 박 대장은 13년간 미국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김 씨를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맞았다. “많이 컸네. 근데 왜 이렇게 말랐니?” 20대 이후 오랜만에 만난 박 대장은 예전처럼 수수한 모자와 점퍼 차림으로 친척들에게 장난기 어린 친근감을 표시했고, 곧 ‘산’으로 올라가 돌아오지 못했다.
김 씨도 자신만의 ‘한계령’을 넘어왔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며 ‘기독교 계열 대중음악(CCM)’ 가수로 활동하던 그는 1998년 결혼한 남편과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김 씨는 시카고에서 영어와 화성학 공부를 병행하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재즈 캠프’에 참가한 뒤 재즈에 눈을 떴다. 찰리 파커, 엘라 피츠제럴드도 모르던 그는 단 1년 반 동안 재즈를 공부해 2003년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다. 학교에 다니며 한국인 작곡가와 ‘드리밍 버터플라이’라는 개신교 음악 그룹을 만들어 미국에서 3장의 앨범을 냈다. 2009년에는 뉴욕 퀸스칼리지에서 재즈보컬 석사학위를 받았다.
故 박영석 대장
후학 양성과 공연 활동에 매진하겠다는 김 씨는 아직도 ‘한계령’을 부를 때마다 눈물을 참는 것이 큰 도전이라고 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