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멜로다.
낙엽만 굴러도 눈물 나는 10대부터 원숙한 사랑의 깊이를 아는 장년층까지, 가을에는 멜로 영화가 그립다. 해마다 이때면 울고 싶은 관객의 뺨을 때려줄 멜로물이 스크린에 걸린다. 올해 찾아온 멜로 영화 중 관객의 취향대로 골라 볼 세 편을 소개한다. 각기 다른 감성의 멜로 영화에 색깔을 입혀봤다.
○ 화이트―‘우리도 사랑일까’
미셸 윌리엄스는 ‘우리도 사랑일까’의 알파이며 오메가다. 담담한 사랑에 대한 보고서를 그만큼 잘 쓰는 배우 가 또 있을까. 그의 연기는 짧은 생을 살다 간 히스 레저와의 비극적 사랑에서 온 것은 아닐까. 티캐스트 제공
영화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상황에서도 공황 장애를 겪는 소심한 마고가 새로운 사랑으로 갈아타는 모험을 그린다. 마고는 뻔한 일상 속에 찾아온 새로운 자극에 잠시 들뜨지만 그것뿐이다. 익숙한 것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이 더 커 보인다. 이내 새로운 환희를 얻고도 마냥 행복할 수 없는 사랑의 불가해성(不可解性)이 관객을 기다린다. 극장을 나오면 마음속에 낙엽이 구르고 찬비가 내린다. 같은 결의 ‘건축학 개론’보다 스산하고 ‘봄날은 간다’보다 아프다.
이제 33세인 여성 감독 세라 폴리는 애늙은이처럼 사랑에 대한 환상을 거세해 버린다. 무덤덤하게 그려낸 화면들은 반찬 냄새나는 일상과 사랑을 샴쌍둥이처럼 이어 붙인다. 롤러코스터를 탄 주인공이 듣던 영국 밴드 버글스의 노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귓전에 오래 맴돈다. 지난달 27일 개봉해 전국 20여 개 스크린에서 ‘조촐하게’ 상영하고 있지만 입소문을 타고 4만 명 가까운 관객이 들었다.
○ 옐로―‘늑대 소년’
가을 동화 같은 영화 ‘늑대 소년’. 송중기와 박보영은 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 늑대의 거친 면과 소년의 순수성을 동시에 선보인 송중기의 연기는 ‘유치한 이야기’라는 비난을 상쇄한다. 영화사 비단길 제공
송중기 박보영은 이 영화를 위해 태어난 배우들처럼 캐릭터에 녹아들었다. 대사 한마디 없이 늑대 소년의 미묘한 감정을 표현한 송중기는 여성 관객의 환호를 받을 만하다. 과거와 현재의 인물로 1인 2역을 소화한 박보영도 ‘가을 동화’의 주인공으로 제격이다.
○ 블루―‘용의자X’
일본 소설이 원작인 ‘용의자X’는 소설과 달리 멜로에 방점을 찍는다. 한 여자에게 헌신하는 류승범이 여성 관객을 울린다. 이요원은 천재 수학자에게 ‘수학보다 아름다운’ 여자다. K&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야기는 원작처럼 흥미롭다. 고교 교사인 천재 수학자 석고(류승범)가 살인을 저지른 옆집 여자 화선(이요원)을 위해 치밀한 알리바이를 짠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