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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카페]바늘구멍 뚫은 조기 퇴사자들이 도서관 찾는 까닭은

입력 | 2012-10-05 03:00:00


김지현 산업부 기자

최근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김에 중앙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대학 동창들을 만났다. 한 명은 8개월 만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친구는 입사 6개월 만에 사표를 쓰고 금융 공기업 입사시험에 대비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도서관을 둘러보니 연륜(年輪)이 느껴지는 ‘고(高)학번’들이 적지 않았다. 도서관 지하 사물함에는 ‘7급 공무원 되기’, ‘공기업 한 번에 통과하기’ 등의 책이 널려 있었다.

입사 후 1년도 안 돼 회사를 그만두는 신입사원이 전체의 23.6%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본보 4일자 B1면 [청년드림]신입사원 1년도 안돼 ‘퇴사 러시’… 무슨일?

바늘구멍보다도 좁다는 요즘 취업문을 통과한 신입사원들이 조기(早期)에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다양했다.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근무환경이 열악해서라는 응답도 있었지만 2년 전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올해 가장 눈에 띈 원인은 ‘공무원·공기업 취업 준비 및 대학원 진학(유학)’이었다. 특히 대기업은 신입사원의 40.6%가 이 같은 이유로 조기 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창은 주중에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무원 사관학교’로 통하는 학원에 다니고 주말마다 자신처럼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온 ‘조기 퇴사생’들과 책에 파묻혀 산다고 했다. 그는 “함께 입사한 회사 동기 90명 중 30명 이상이 이미 사표를 냈다”며 “조금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구는 ‘백수’라는 타이틀이 싫어 대학원에 적만 두고 공기업 입사 시험을 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회사에 들어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금세 뛰쳐나온 조기 퇴사자들은 “졸업하고 백수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합격시켜주는 회사에 입사했던 게 문제였다”라고 했다. 그러고도 또 백수는 되고 싶지 않아 다시 수십 장의 입사지원서를 쓰는 자신의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신입사원들의 조기 퇴사는 당사자는 물론 기업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 손실을 초래하는 사회적 문제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기업이 신입사원 한 명을 교육하는 데 평균 39일 걸리고, 돈도 217만 원이 든다고 한다. 매년 수십억 원을 낭비하는 것도 아깝지만 최종면접에서 이들에 밀려 탈락한 지원자들이 겪어야 할 열패감(劣敗感)은 누가 보상해야 할까.

기업은 어렵게 뽑은 인재들이 왜 만족하지 못하고 퇴사하는지 면밀히 분석해야 하고, 입사 준비생들도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지현 산업부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