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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민화의 세계]“집 떠나있어도 조상만은 모셔야”… 감모여재도

입력 | 2012-09-22 03:00:00

사당그림 펼쳐놓고 제사 지내




‘감모여재도’(19세기 후반), 일본민예관 소장, 종이에 채색, 85.0×103.0cm. 한 칸에 위패가 하나뿐인 단출한 서민의 사당이지만, 독특한 시점 표현을 통해 제수의 풍요로움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주일 뒤면 한가위다. 그런데 명절만 되면 늘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제사다. 준비는 번거롭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도 없는 의식. 이는 오랜 세월 우리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해 온 유교문화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대형마트에 ‘미니 제기세트’라는 상품이 등장했다. 크기가 작다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음식만 차릴 수 있는 최소한의 제기 세트를 뜻한다.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명절 연휴에 맞춰 여행 가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콘도나 호텔에서라도 제사를 지내려면 휴대가 간편한 미니 제기세트가 유용하지 않겠는가.

○ 간편하고 경제적인 사당 그림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집에서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제사를 지냈을까. 그들은 사당을 그린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를 펼쳐 놓고 절을 했다. 여기서 감모여재란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해 그분들이 살아 계시는 것처럼 느껴진다’란 뜻이다. 감모여재도는 ‘사당도’나 ‘영위도(靈位圖)’라 불리기도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제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해 다른 사람이 대행하게 하는 것은 차라리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정성이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감모여재도만 있으면 멀리서라도 직접 제사를 지낼 수 있으니 원행(遠行)에 이처럼 긴요한 물건이 없었다.

사당이 따로 없는 서민들도 제사를 지낼 때 이 그림을 사용했다. 원래 제사는 별도로 세운 사당에서 지내는 것이 원칙이다. 사당은 ‘가묘(家廟)’ 혹은 ‘제실(祭室)’이라고도 불렀는데, 그 규모는 신분에 따라 달랐다. 천자는 7묘로 하고, 제후는 5묘, 대부는 3묘, 사(士)는 1묘, 서인은 침(寢·집안)에서 제사해야 한다고 ‘예기’에 기록돼 있다. 서인은 사당에서 신주를 따로 모실 수 없기 때문에 지방을 쓰는 지방 제사를 드리면 된다. 감모여재도에 그려진 위패에 지방을 붙인 자국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감모여재도는 유교의 제사를 서민들에게 널리 퍼지게 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감모여재도는 휴대가 간편할 뿐 아니라 경제성도 뛰어났다. 그림에 사당뿐만 아니라 제사상과 제수까지 차려져 있으니 말이다. 올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추석 상차림 비용은 재래시장을 기준으로 18만5000원이라고 한다. 옛날이라고 해서 명절 제사상을 공짜로 차렸을 리 없다. 그런데 감모여재도 하나만 있으면 제사 때마다 딱히 돈 들 일이 없지 않았겠는가. 매우 경제적인 사당인 셈이다.

○ 누구를 위한 제사인가

감모여재도는 족자와 병풍으로 제작됐다. 족자는 얼마든지 휴대가 가능하고, 병풍은 집에 두고 치는 대병도 있지만 갖고 다닐 수 있는 소병도 있었다. 일본민예관에 소장된 ‘감모여재도’는 족자 형태다. 그림은 활기와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팔작지붕(삼각형의 벽이 있는 기와지붕)의 처마는 위로 슬쩍 올라가 있고 문짝도 시원하게 들려 있다. 제사상은 위에서 바라보는 듯 거의 평면으로 전개돼 있는데, 위패를 중심으로 위아래 공간이 널찍하게 열려 있다. 여기에 과일과 술잔 등을 넉넉하게 배치하고, 좌우에는 모란꽃병까지 놓는 여유가 보인다. 상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지만, 기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앞쪽에 있다. 그래서 상은 상대로, 기물은 기물대로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서양식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많은 물상들을 넉넉하게 배치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민화만이 갖고 있는, 자유롭고 융통성 있는 시점이다. 더구나 사당의 양쪽 벽에는 패랭이가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엄격한 제사 의식 속에서도 친근함과 다정함이 엿보이게 하는 파격이다.

그런데 제수로 쓰인 음식은 뜻밖이다. 일반 제사상에 놓이는 포, 생선, 나물, 곶감, 밤은 보이지 않고 수박, 참외, 석류, 유자, 포도가 있다. 이들은 모두 다산, 장수, 행복을 기원하는 길상의 상징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상께 경배하면서 제수를 통해 자신들의 행복도 함께 기원하는 후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제사인 것이다.

미니 제기세트와 감모여재도. 두 물품을 비교해 보면 제사에 대한 우리와 조상들의 인식에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제사라고 하면 곧바로 제사 음식을 떠올린다. 풍성하든 그렇지 않든 제사를 지내려면 마땅히 음식을 차려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에게 음식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조상이 실제로 살아계신 것처럼 느끼는 진정한 정성과 마음이었다. 우리가 음식에 집착하는 것은 분명 현대 물질문명 탓이리라. 감모여재도의 속뜻을 살려 이제라도 제사를 지내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정병모 경주대 교수(문화재학)·한국민화학회 회장, chongpm@g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