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6층 회의실에서 ‘동아일보 대선보도 검증위원회’의 첫 회의가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유지담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성진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최우열 기자, 윤종구 정치부 차장, 한기흥 편집국 부국장, 최영훈 편집국장, 박제균 정치부장, 김슬기 희곡작가,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대환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은미 교수=그동안의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아직 대선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 굉장히 고민스러운 듯하다. 전체적으론 ‘안 원장을 별로 예뻐하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원장이 이사를 자주 다녔다는 내용(6일자 A6면 ‘모친 돈으로 집 사고 장모 소유 집 거주…캥거루족 안철수?’ 기사)을 ‘캥거루족’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6면으로 비중을 낮춰 보도했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인터넷 등 디지털로 뉴스를 소비하기 때문에 기사 위치의 중요도와 관계없이 키워드 위주로 확산·전파되는 경우가 많다. 고민을 해서 6면에 기사를 채웠다고 해도 헤드라인을 ‘캥거루족’이라고 다소 섹시하게 뽑아서 검색어 순위가 올라가고 트위터를 통한 전파글에 이런 제목들이 붙는다. ‘안철수 네거티브를 확산되게 한 게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김 변호사=안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의 기자회견 기사(7일자 A1면)에서 금 변호사의 주장과 새누리당 정준길 전 공보위원의 반박을 두 줄 제목으로, 동일한 비중으로 나란히 실었다. 일견 공정한 보도처럼 보일 수 있지만, 피해자(안 원장 측)의 피해사실 진술을 가해자(박 후보 측)의 진술과 동일하게 다뤘다고 본다면 공정을 가장한 편파적인 보도라고 생각한다. 통상 가해자와 피해자 진술이 함께 있으면 피해자의 얘기에 비중을 두는 게 보도 관행 아닌가. 10일자 A1면 여론조사 기사에서 금 변호사의 폭로가 ‘安측 과장 43%’ ‘與의 협박 34%’라고 보도했다. 이걸 보면 국민 대다수가 안 원장 측이 잘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언론의 여론조사들과 상반된 결과다. 설문 문항에서 ‘박근혜 후보 측의 명백한 협박으로 잘못된 것으로 본다’며 ‘명백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문제다. 설문 자체가 국민의 정확한 의사를 파악하는 데 실패한 것 아닌가.
▽김 작가=최근 기사들을 살펴보면 기사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이나 사진에서 그런 면이 나타난다. 8월 27일자 A10면엔 박근혜 후보에 대해선 ‘朴, 연이은 통합행보…이번엔 2030 속으로’라고 제목을 달고, 같은 면에 안철수 원장 기사는 ‘경찰, 안철수 룸살롱 출입 뒷조사’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제목에 이렇게 나오니 특정 정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나온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9월 3일 A6면 정기국회 개원 기사의 마지막 문단도 문제다. “야당이 무책임한 공세를 이어가면 여당이 바로잡는 역할도 해야 한다”든가 ‘새누리당이 안 원장에 대한 검증자료를 축적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적절한 시기를 잡아 화력을 쏟아 부을 것으로 보인다’는 문장이 있다. 야당은 무책임한 공세만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는 느낌과 안 원장에 대해 안 좋은 자료가 많다는 느낌이 든다.
▽박 부장=인용한 ‘여당이 바로잡는 역할’ 운운은 새누리당 관계자의 발언이라 그대로 실은 것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 교수=저는 시각을 좀 달리한다. 대선처럼 모든 사람이 정치화되는 시기에 보도 검증위원회를 구성해서 추구하는 게 무엇인가. 완전히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신문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그게 한국사회에서 가능한 일인가. 불편부당성과 공정성이라는 게 정치적인 입장이 없이 무색무취한 이미지를 주려 하는 것인가. 안 원장에 대해 우호적인 젊은층이 “안 원장에 대한 검증기사를 싣는다면 문제”라고 지적할 순 있지만, 동아일보 스스로가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다른 문제다. 어떤 기사를 1면에 실을지, 6면에 실을지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겨레나 경향신문도 그런 걸 다 하지 말고 모든 신문이 중립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다른 선호를 가지고 있고, 각각의 신문이 서로 다른 선호의 독자를 만족시키는 게 신문 시장의 구독 비율을 반영한다. 다만 그 보도 과정에서 어떤 팩트에 대해 전달을 하지 않는다거나, 여론조사를 왜곡한다거나 하는 건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박 부장=우리의 인식의 출발은 대한민국이 두 개로 쪼개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에서 여당이 이기든 야당이 이기든 나라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데, 대선 투표일이 새로운 복수의 출발일이 되고 있다. 사회 전체가 진영 논리에 빠져 누가 뭘 하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 이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떠나 우리 스스로 아픈 지적을 듣고 이를 반영해 보도하는 노력을 해야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김 변호사=안 원장과 관련한 6일자 A2면 ‘이사회 참석 땐 포스코가 항공료 부담’ 기사에서 포스코 이사인 안 원장이 미국에 체류할 때 이사회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면 회사가 항공료를 부담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 항공료 6000만 원이면 큰 액수인데, 회사의 필요에 따라 입국한 비용을 안 원장이 그냥 먹은 것처럼 생각하기 쉽도록 보도했다.
▽김대환 교수=유학 갈 사람이 포스코 사외이사를 맡은 문제점을 지적한 측면이 있다.
▽유 위원장=언론들이 안 원장에 대해 ‘왜 출마 선언을 빨리 안 하나’라고 비판하는 보도를 해왔다. 검증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는 식의 보도를 보면 여기서부터 의도가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는 국민들이 보고 판단을 할 정책을 왜 내놓지 않느냐는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훨씬 공정한 보도가 아닐까. 우리 국민이 어리석지가 않고, 다 안다. 사회가 선거 때마다 너무나 두 쪽으로 나뉘어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중간에 있는 사람, 이 편 저 편도 아닌 사람은 항상 외롭고 고통스러웠고 눈물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2002년 대선 때 중앙선관위원장으로서 공정한 선거관리를 했고 아무도 나에게 항의하지 않았지만, 결국 나중엔 나도 보수나 진보 어느 쪽에도 앉기 힘들었다. 옳은 말은 누가 해도 옳은 말이 되고, 틀린 행동은 누가 해도 틀린 행동이어야 한다. 언제나 냉정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이 기사가 어느 편을 들어서 보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성찰을 해야 한다. 오늘 검증위에서 지적된 내용과 잘못이라는 평을 받은 것도 그대로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 기사를 믿지 않는 젊은이들도 있다. 그런 느낌을 가지도록 한 것 자체도 반성해야 한다.
정리=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