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꿈속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호랑이는 아버지의 뒤만 졸졸 따라왔다. 얼마 뒤 호랑이처럼 우렁찬 울음소리의 아들이 태어났다. 27년 뒤 호랑이의 기운은 런던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2012런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오른쪽)과 그의 아버지(왼쪽). 김천|박화용 기자
런던행 앞두고 부상 “사실 기대 안했죠”
“재범이가 금 땄을 땐 하늘 끝 오른 기분”
“리우에서도 금메달 딴다면 바랄게 없어”
2012런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27·한국마사회)의 아버지 김기용(56) 씨는 ‘최민호 올림픽 제패기념 2012 전국 중·고등학교 유도대회 겸 제40회 추계 전국 중·고등학교 유도연맹전’ 개회식이 열린 10일 경북 김천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양의철 경북유도회 전무가 “재범이 아버지”라고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정도로 체격이 작았다. 김 씨는 “재범이가 중학교까지는 대한민국 유도선수 중 제일 작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작은 체격은 집안내력에 가깝다. 그런데 아들의 몸집이 고교 때부터 불어나더라는 것이다. 천부적 운동감각과 근성, 여기에 체격까지 갖춰진 이 때부터 아버지는 아들이 큰일을 낼 것으로 짐작하기 시작했다.
김재범은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땄다. 당시 장염을 딛고 은메달을 땄다. 기뻤지만 아쉬움도 남더란다. “내 핏줄이라 그런 줄 몰라도, 금메달 기대를 많이 했지요. 그런데 장염이 와서 비쇼프(독일)한테 결승에서 진 거에요. 그 전까지 단 한번도 안 졌는데….”
와신상담의 4년 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아들은 또 다쳤다. 아픈 몸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김재범은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른 루트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재범이가 안 좋은 얘기는 집에다 안 해요. 가기 전에도 ‘금메달을 따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거예요. 아픈 거 모르는 줄 알고….”
사실 아버지는 런던올림픽은 포기했었다. 그 몸으로는 도저히 무리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그 몸으로 8강에 오르자 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김천시청에서 시민들과 응원했는데, 아들은 믿어지지 않는 투혼으로 비쇼프를 꺾고 금메달을 땄다. “그 기분 모르실 겁니다. 베이징 은메달이 발밑이라면, 런던 금메달 딸 때는 하늘 끝에 간 기분이었어요.(웃음)”
○아버지가 아들에게 바라는 남은 소원
김재범의 나이는 27세다. 4년 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한국유도 사상 첫 올림픽 2연패와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나이다. “4년 후 브라질이 재범이의 마지막 무대가 될 거라고 봅니다. 다치지 않고 그때 또 메달을 따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죠.”
아버지는 김천 인근 구미에 있는 딸집에서 살고 있다. 아들이 상금을 타면 쓰시라고 큰돈을 줄 때도 있지만 김 씨가 고사한다. “우리 부부는 재범이가 준 연금통장으로 충분합니다. 나머지 돈은 우리보다 살 날이 더 많은 재범이가 가져야죠. 은퇴 이후의 삶도 생각해야 되고….” 이미 아버지는 더 바랄 것이 없는 표정이었다.
김천|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