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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차 한잔]‘전쟁기의 언론과 문학’ 낸 정진석 교수

입력 | 2012-07-28 03:00:00

“월북 언론인-문인들의 활동상 최후까지 재구성”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과거에 비하면 북한 언론과 문학 관련 자료에 대한 접근이 수월해진 편”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한국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로 꼽혀온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73)가 태평양전쟁에서 광복, 6·25전쟁에 이르는 시기의 언론과 문학을 실증적으로 탐구한 책을 출간했다.

신간 ‘전쟁기의 언론과 문학’(소명출판)에서 정 교수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웠던 혼란의 와중에 언론과 문학이 겪은 수난과 역할을 서술했다. 특히 북한 기관지 ‘노동신문’ ‘민주조선’, 노동당 이론잡지 ‘근로자’, 각종 재판기록 등 북한 문헌을 꼼꼼히 찾아 북으로 올라간 공산주의자 언론인·문인들의 활동상과 최후까지 재구성했다. 언론과 문학을 함께 다룬 것은 1941∼53년의 시기에 많은 언론인이 곧 문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사와 문학사 연구에서 북한에 관한 연구는 미진한 상황이어서 이 분야를 개척한다는 심정으로 공들여 연구했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통일부가 북한의 문학잡지 ‘조선문학’ 영인본을 중국 옌볜(延邊)을 통해 들여오는 등 북한 언론과 문학 자료에 접근하기가 과거보다 수월해진 점도 연구에 도움이 됐다.

그는 “김일성이 6·25전쟁 직전 한설야 이기영 이태준 등 유명 문인들에게 평화공세에 대한 글을 쓰게 해 노동신문과 민주조선에 싣는 등 남침 준비에 언론인·문인을 동원했다”며 “전쟁이 시작된 후에는 김일성의 사진을 수차례 노동신문 1면에 크게 싣는 등 북한에서 언론인은 독재자의 나팔수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비해 남한에선 광복 직후 한동안 좌익 신문이 합법적으로 발행되기도 했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시기엔 지금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자유는 있었다”고 평가했다.

문학평론가 임화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기자 출신 박승원 등 남로당 계열의 언론인·문인 5명이 휴전 직후 정치재판을 통해 미제간첩 혐의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과정도 상세히 추적했다. 정 교수는 “임화는 1951년 북한이 최고의 예술인 7명에게 주는 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사형되고 전 재산을 몰수당해 가족까지 알거지로 전락한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조선인 학생의 일본군 입대를 선동한 ‘반도학도 출진보’에 여운형의 글이 실린 것을 근거로 “여운형도 친일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 등 우파 인사의 친일에 대해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여운형 같은 좌파 인사에게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는 우리 사회 일부의 이중 잣대를 비판한 것. 그러나 그는 “여운형에게도 움직일 수 없는 친일의 정황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일생을 놓고 볼 때 항일 독립운동의 공적이 더 크다고 본다”고 썼다.

다음 집필 계획을 묻자 그는 “조선시대 관보인 조보(朝報)에서부터 현재의 신문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언론통사를 총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