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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에세이/김지룡]“아이를 키우는 것은 조금씩 미쳐가는 일이다”

입력 | 2012-07-26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아이는 아이일 때 가장 귀엽다. 그런데 아이가 아이로 있는 기간은 의외로 짧다. 금세 사춘기가 오고 청소년이 된다. 큰딸아이가 태어난 후로 주말마다 내가 아이를 보았다. 아이랑 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웠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자 나보다 친구와 노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김지룡 문화평론가

그때 둘째 아들이 세 살이었는데, 큰 결심을 했다.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집에서 일하자는 것이었다. 개인사무실을 접고 집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외 활동을 줄이면 수입이 줄겠지만,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대신 아들아이가 아직 귀여운 아이일 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집으로 들어간 뒤 전업주부인 아내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주말에 아이를 돌보는 일과 평소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온종일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달래고…. 아무리 잘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을 끝도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세 살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의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일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예전에는 아이가 네다섯 살만 되어도 알아서 밖에 나가 놀았다. 지금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항상 옆에서 챙겨 주어야 한다. 한글도 영어도 점점 엄마의 몫이 되어 가고 있다. 요즘은 아이가 수학 100점을 받는 것도 엄마 책임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태생적으로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존재’로 태어난다. 강아지도 주인 말을 안 듣는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아이도 인격이 있고 개성이 있다. 자기표현과 주장을 한다. 엄마와 충돌할 일이 많다. 예전에는 호통을 치거나 회초리를 들었다. 지금은 수많은 교육전문가들이 호통도 치지 말고 때리지도 말라고 한다. 게다가 그 말이 모두 맞는 것 같다. 잠시 격한 감정에 아이에게 호통을 치고 나면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자책감에 시달린다.

게다가 큰딸아이는 초등학생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엄마는 학교에 죄인이 된다. 교사 앞에서 자신을 죽이고 바짝 엎드려야 한다. 학교는 그런 엄마를 하인처럼 부려먹는다. 급식도우미로 부르고 도서관 사서로 부르고 환경미화라는 미명 하에 청소를 시킨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있는 급식도우미. 아내가 정말 가기 싫다고 하기에 내가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반겨 주는 사람은커녕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내해 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알아서 취사실에서 급식대를 끌고 와 복도에서 대기해야 한다.

아이들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기 때문에 배식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배식이 끝나면 서둘러 밥을 먹고, 반납하는 배식판을 정리해야 한다. 쌀쌀한 복도에서 밥을 먹다가 불현듯 ‘내가 왜 이따위 대접을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아내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전업주부인 아내를 지켜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매일 조금씩 미쳐 가는 일이다.”

아내도 그리고 주위의 전업주부 엄마들도 우울증 증상이 있는 것 같았다. 일하는 엄마도 엄청 힘들어 하지만, 전업주부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편안하게 생활한다는 것은 편견일 뿐이었다.

전업주부에게 가정은 ‘퇴근 없는 직장’이고, 힘들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직장이다. 이런 엄마를 구제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빠밖에 없을 것이다. 주말이면 고궁이나 박물관으로 체험학습을 겸한 가족 나들이를 많이 했다. 요즘에는 가족 나들이를 줄였다. 그 대신 주말에 나 혼자 아이들을 끌고 밖으로 나간다. 엄마도 한 사람의 인간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을 돌볼 권리가 있다. 아이로부터 해방된 시간, 오로지 자신을 돌보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일 것이다.

김지룡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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