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의 하룻밤 ― 세계문화유산 경주 양동마을 이향정을 찾아
14일 경주 양동마을을 방문한 기자는 중요민속자료 제79호로 지정된 이향정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건넌방에서 바라본 안채(왼쪽)와 사랑채.
안채와 사랑채, 아래채, 방앗간채 등 네 개 건물이 ‘ㅁ’자 형을 이루고 있다. 기자가 머문 곳은 아래채의 건넌방으로 이 고택에서 가장 작은 방이다. 혼인 전 어린 자녀가 주로 머물렀다고 한다. 방앗간채에는 발로 디뎌 곡식을 찧는 디딜방아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사랑채엔 ‘만취재(晩翠齋)’라고 적힌 편액(扁額·방이나 문 위에 걸어놓는 액자)이 걸려 있다. 양동마을에서 유일한 초서체 편액이다.
양동마을은 ‘외손(外孫)마을’로 불린다. 부유한 처가 덕을 본 남자가 씨족의 시작이기 때문. 경주 손씨 입향조(入鄕祖)인 손소 공이 부자였던 류복하의 무남독녀와 결혼한 후 처가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아 이곳에 살게 됐다. 여강 이씨 이번 공도 손소 공의 7남매 중 차녀와 결혼해 이곳으로 옮겨왔고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유학자 회재 이언적 공을 낳았다. 양동마을 문화해설사인 김명선 씨는 “조선 초만 해도 남자가 처가를 따라가 사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마을과 고택의 형태가 잘 유지돼 있는 양동마을 전경. 지금이라도 한복 입은 아이가 대문을 열고 뛰어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건 전혀 다르다. 아침 무렵 문지방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공기, 새소리, 그리고 구석구석 살펴본 공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한 상상은 하룻밤이라도 묵어 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다. 최근 정비된 고택들은 수세식 화장실을 갖춰놓았다.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이곳에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2주년을 기념하는 ‘양동마을문화축제’가 열린다. 054-762-2633
경주=글·사진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