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동구 송림지하보도, 우범지대서 동네사랑방으로
11일 인천 동구 송림지하보도를 찾은 어린이들이 각종 무공해 채소가 자라고 있는 식물재배실을 둘러보고 있다. 지하 17m에 조성된 이 지하보도는 한여름에도 23도 안팎의 기온을 유지해 시원한 데다 쾌적한 환경으로 보수돼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탈바꿈했다. 인천 동구 제공
한낮의 수은주가 섭씨 30도까지 올라간 11일 오후 3시경 면적 2940m²(약 890평) 규모의 지하보도에 내려서자 서늘한 기운이 확 느껴졌다. 지하 17m 깊이에 설치돼 별도의 냉방시설이 없어도 온도계의 눈금은 23도를 가리키고 있다.
지하보도 내부에는 초등학생 20여 명이 한쪽 벽면에 설치된 식물재배실인 ‘동이네 다랑채’를 구경하고 있다. 폭 2.7m, 길이 68m에 이르는 이 재배실은 5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천 동구가 지하보도에 설치한 도심형 농장이다.
재배실 맞은편 벽면은 문화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지하보도 안에는 북 카페도 있다. 의자와 책상 컴퓨터 음료수자판기가 설치된 북 카페에서는 청소년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식물재배실로 보수가 이뤄지기 전 송림지하보도의 옛 모습. 인천 동구 제공
결국 시가 2006년 보수 및 마감공사를 마치고 다시 개통했지만 악취와 습기가 여전했다. 주민이 이용하지 않자 노숙인과 불량 학생의 놀이터로 변했다. 주민들은 지하보도에 시설을 보수하든지 문을 닫으라는 민원을 수차례 제출했지만 관리권을 가진 시는 나서지 않았다. 연간 예산이 1300억 원으로 재정자립도가 32%에 불과해 살림이 빠듯한 동구는 지하보도 보수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기 힘들었다.
시는 2009년 관리권을 구로 넘겼고, 구는 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공모해 식물재배실과 문화공간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65세 이상 노인이 1만1050명으로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하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도 3.5%(2639명)로 인천에서 가장 많은 특성을 살린 아이디어였다. 이들 중 65세 이상 노인 2, 3명을 재배실 채소를 수확할 때마다 일시 고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해 6월 공사에 들어가 대형 제습기 8대를 설치했고 올해 5월 지하보도의 문을 새로 열었다.
지난달 일본 NHK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농산물 안전성을 검증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 재배실을 방송했다. 주민 오현주 씨(39·여)는 “혐오시설이 사랑방으로 변해 동네에 애착과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