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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BBK편지 배후 없다”… 野 “봐주기 수사”

입력 | 2012-07-13 03:00:00


2007년 대선 당시 김경준 씨(46·수감 중)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된 BBK 가짜편지에 대해 검찰이 12일 “배후는 없다”는 결론을 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 이중희)는 “양승덕 경희대 관광대학원 행정실장(59)의 지시에 따라 신명 씨(51·치과의사·사진)가 형인 신경화 씨(54·수감 중)가 쓴 것처럼 편지를 가짜로 만들었다”며 “이 편지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양 실장 이외의 배후는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가짜편지를 만들어 내 명예가 훼손됐다”며 김경준 씨가 신명, 신경화 형제와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고소한 이 사건에서 피고소인 전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나의 동지 김경준에게…자네가 큰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이 편지는 김 씨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구치소 동료 수감자인 신경화 씨가 2007년 11월 김 씨에게 보낸 것이라고 2007년 12월 13일 한나라당이 세상에 공개했다. ‘큰집’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측을 뜻했다. 2007년 대선 직전 당시 한나라당은 이 편지를 근거로 “김 씨가 여권의 사주를 받고 기획 입국했다”고 주장했고 대선 정국은 요동쳤다.

검찰은 이 편지가 작성된 경위와 관련해 양 실장이 ‘김 씨가 정동영 후보 측과 모종의 약속을 한 후 입국했다’는 내용으로 초안을 잡은 뒤 신명 씨가 이를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 검찰이 발표한 편지 경위

검찰에 따르면 신명 씨는 2007년 10월 강도혐의로 미국에 수감 중이던 친형 경화 씨에게서 “김경준이 ‘이명박 대통령이 BBK 실소유주다. 증거를 갖고 한국으로 가면 호텔에서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경준만 송환되면 기획입국이라고 안 좋게 보일 수 있으니 나도 같이 송환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곧이어 신경화 씨가 2007년 10월 25일 한국으로 압송돼 대전교도소에 수감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대통합민주신당 측 인사들이 신명 씨에게 접촉해 왔다. 당시 신경화 씨의 송환사실을 아는 사람은 국내에 극소수였는데 대통합민주신당이 어떻게 알고 접근했는지는 검찰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들은 신경화 씨 무료변론을 약속했다.

신명 씨는 양아버지처럼 따르던 양 실장에게 “김경준 입국이 여권과 약속이 있었던 기획입국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양 씨는 신명 씨의 치의과대학 6년간 등록금을 지원했을 정도로 혈육 같은 사이였다.

같은 해 11월 5일 신명 씨의 부탁으로 대통합민주신당 측 이모 변호사 등을 만난 양 실장은 신경화 씨에 대한 무료변론 각서와 명함을 받았다. 양 실장은 이를 은사인 김병진 두원공대 총장(당시 한나라당 상임특보)에게 보여주며 한나라당 유력자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양 씨가 ‘기획입국’이라는 신명 씨 말을 믿고 한나라당에 이를 알려줘 공을 세우려 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김 총장은 2007년 11월 6일에서 8일 사이에 양 실장에게서 받은 각서와 명함을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당시 한나라당 BBK 대책팀장)과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에게 기획입국의 근거라며 보여줬지만 은 전 위원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고, 홍 전 대표는 못 믿겠다며 면박을 줬다.

그러자 양 실장은 신명 씨에게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같은 달 9일 편지 초안을 만든 뒤 신명 씨로 하여금 형 신경화 씨 명의의 편지를 대필하게 했다. 김 총장이 이 편지를 추가로 제시하자 은 전 위원은 편지를 신뢰했고 이를 홍 전 대표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결국 검찰은 편지가 ‘가짜편지’라기보다는 ‘대필편지’에 가깝다고 결론지었다.

○ 편지 의혹 당사자들과 야당 반발

이날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민주통합당은 “정치검찰은 ‘수사는 원숭이처럼 하고 발표는 도둑고양이처럼 한다’는 조롱을 들어도 할 말 없게 됐다”고 맹비난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디도스 ‘윗선’ 없고, 불법사찰 ‘배후’ 없고, 내곡동 사저 ‘혐의’ 없다던 검찰이 드디어 BBK 가짜편지에 대해서는 ‘책임질 사람’ 없다며 국민들을 바보 취급했다”고 비판했다.

양 실장이 최종 기획자라는 검찰 발표에 대해서도 당사자들과 야당은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신명 씨는 양 실장이 자신에게 편지를 쓰도록 시킨 것은 한나라당 실세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상득 전 의원 등을 배후로 거론해왔다. 검찰은 통화기록 등을 조사하고 최 전 위원장과 이 전 의원을 상대로 조사했으나 두 사람 모두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양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편지의 초안을 잡아 작성하도록 했다는 것을 완강히 부인했으며, 12일에도 언론에 “편지를 쓰라고 지시한 적도 초안을 써 준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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