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섭 중앙대 교수 한국정치학회장
인물-정책 검증 위한 시간 필요
여야를 불문하고 국민적 관심을 끌기 위해 올림픽 경기 일정을 고려하여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올림픽 일정 중에 경선을 치르게 되면 국민적 관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6·25전쟁 중에도 대통령 선거를 치러낸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치적 저력을 과소평가하는 가소로운 주장이다. 도대체 올림픽과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민주정치가 공고화된 대통령제 선진국에서 양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투표일 6개월 전까지도 결정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의 경우 11월 대선을 위해 1월부터 당내 경선을 시작해 선거 6개월 전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돼 본선을 위해서 경쟁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양대 정당의 대선 후보자가 조속히 결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인물과 정책에 대한 검증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국가 진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국가지도자이기 때문에 리더십 능력도 검증 대상이다. 새로운 정치엘리트를 충원하는 인사권 행사는 물론이고 ‘20-50클럽’(1인당 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강국)에 세계에서 7번째로 가입하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이에 걸맞은 대외관계 수립, 남북관계의 전개 등에 관한 정책노선을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서 국가 운명이 달라진다. 이러한 정책 현안에 대해 대통령 후보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밝혀 달라고 국민은 요구할 권리가 있다.
후보 단일화와 옹립은 정치구태
대통령 후보 입장에서는 충분한 시간 동안 국민의 검증을 받겠다는 당당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것이 대통령 후보의 품격이다. 이벤트를 통한 단일화나 무책임한 인기 영합 혹은 신비주의적 후보 옹립은 21세기 대한민국에 더이상 걸맞지 않은 정치 행태다. 이런 방식의 후보 옹립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통령이 돼 5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할 사람은 검증에 당당히 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가혹한 검증에 미리 겁을 먹거나 요행수를 바라고 검증기간을 줄이려고 한다면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김호섭 중앙대 교수 한국정치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