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 ‘돈의 맛’ 보기
영화 ‘돈의 맛’에서 섹시한 남자 비서 역을 맡은 배우 김강우. 시너지 제공
진지남=왜 ‘돈의 맛’이 상을 못 받았을까? 지난해 ‘하녀’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뒤 연속해서 임상수의 작품이 경쟁부문에 초청된지라 내심 기대가 컸는데 말이야.
투덜녀=난 애초부터 이 영화가 수상하지 못하리라 확신했어. 최상류층의 사생활을 전시하면서 깐죽대기만 할 뿐 정작 감독 자신의 세계관을 찾아볼 수가 없잖아? 임 감독이 최근 내놓은 영화들을 보라고. ‘그때 그 사람들’ ‘하녀’ ‘돈의 맛’…. 알고 보면 다 똑같아. 최고권력자나 부자 같은 ‘센 놈’을 골라 씹어대고 비아냥거리는 거. 도대체 감독 자신의 생각이란 게 뭐야?
투덜녀=그래봐야 뭐해? 진정한 예술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라고!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예술을 완성시키는 건 작가의 내면적 고민과 성찰이지. 불평불만이 예술이면 나야말로 최고의 예술가이게?
진지남=아냐. 이 영화에는 부에 대한 감독의 뚜렷한 시선이 담겨 있어. ‘부는 굴욕과 고독을 숙명적으로 부른다’는 거지. 서른 살은 어린 듯한 남자 비서의 근육질 다리에 허벅지를 비벼대면서 “오우, 컴 온 베이비” 하는 재벌 안주인을 봐.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또 외로워 보이냔 말이야. 이런 냉소와 블랙유머, 그것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묘하게 쓸쓸한 공기, 이게 바로 임상수의 세계야.
투덜녀=돈의 맛에 중독된 사람들이 결국 스스로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아유, 정말 ‘올드’한 문제의식 아닐까?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어. ‘임상수가 부자들을 냉소하거나 미워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부자를 동경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야.
진지남=오잉? 뭔 말이야?
진지남=으음, 이런 현상을 두고 ‘예기치 않은 결과가 빚어내는 모순이나 부조리’, 즉 아이러니라고 불러.
투덜녀=더 웃기는 아이러니가 있어. ‘부도덕한 최상류층을 실컷 미워하라’고 부추기는 이 영화에 제작비를 투자한 것은 재벌기업이니 말이야. 부자의 돈으로 부자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어 부를 모은다?
진지남=으음, 그런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고 전문용어로 ‘선순환구조’라고 하는 것이야….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