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문화부 차장
‘하늘 위건 하늘 아래건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뜻의 이 고고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반적으로는 가장 존귀한 존재가 태어났음을 스스로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으로 새긴다. 훗날 큰 깨달음을 얻고 중생제도의 대자비를 실천할 성인의 탄생을 스스로 예고한다는 신화적이고 계시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갓난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말을 했을 리가 없다. 아마도 말문이 트이고 어느 정도 지혜가 생긴 꼬마 싯다르타가 인간의 절대고독을 절감하면서 “아 하늘 아래 오직 나 혼자뿐이로구나”라고 일장 탄식을 토한 것이 후대의 신화적 각색을 거친 것이 아닐까. 원문의 독존(獨尊)이 ‘독존(獨存)’이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이는 근대 이후의 사실주의적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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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설의 관점에서 볼 때 오로지 자신만이 홀로 존귀한 존재라는 아기 부처의 천명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하지만 종교는 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역설의 산물이다. 태어나는 순간 “나 홀로 존귀하다”고 선포했던 인물이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정반대의 깨달음에 도달했다는 것이 극적 반전의 감동을 안겨준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중동의 사막에서 탄생한 일신교가 ‘기도의 종교’라면 힌두교와 불교 등 인도 몬순 지역에서 태어난 종교들은 ‘명상의 종교’라고 말한 것은 독일의 종교학자 헤르만 베크였다. 기도의 종교에선 절대적 타자인 신과의 감응이 중요하다면 명상의 종교에선 절대고독에 놓인 자아(아트만)와의 대면이 중요하다.
불교의 위대함은 개별적 자아를 중시하는 명상의 종교에서 출발했지만 기도의 종교에서 중시하는 타자에 대한 무한 사랑을 함께 성취해낸 점이다. 만물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연기설을 통해 개별적 아트만을 초월적 아나트만(무아·無我)으로 무한 확장시켰다. 속된 말로 ‘나 홀로’라는 아집과 애착을 버리고 미물까지 아우르는 ‘우리 모두’에 대한 자비심에 눈뜨게 한 것이다.
2556번째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한국 불교계가 아수라장이 됐다. 부처님이 무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고 말한 탐진치(貪瞋痴)의 삼독(三毒)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다. 탐은 탐하는 마음, 진은 성내는 마음, 치는 어리석은 마음을 말한다. 유불선의 동양사상을 기독교와 접목했던 다석 유영모는 치(痴)를 여색(女色)으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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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문화부 차장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