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심할땐 약물-정신치료 병행 필요… 6개월은 복용해야
A. 최근 젊은 직장 여성이 남편과 함께 진료실에 찾아왔습니다. 전형적인 산후우울증 환자였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슬픈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흐르고 기운이 없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분의 눈자위에 맞은 듯한 멍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면담 중간에 “눈은 어쩌다가”라고 묻자 남편분이 고개를 떨구고 이야기했습니다. “(우울증이 아니라) 게으른 건 줄 알았습니다.”
선글라스를 쓴 것처럼 세상이 어둡게 보이고 동굴에 갇힌 것처럼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느껴집니다. 우울증 환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 주변의 오해와 비난입니다.
“의지가 부족하다”, “게으르다”, “공부나 일을 하기 싫어서 그렇다”. 상처 주는 말을 듣고 나면 스스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3명 중 2명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치료받지 않은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가벼운 우울증 환자는 주변에서 조금만 도와줘도 스스로 이겨냅니다. 그러나 심한 우울증 환자는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함께 받아야 합니다. 환자는 치료를 통해 호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하지만 8주면 70∼80%의 환자가 좋아집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약물치료를 하자고 말씀드리면 초반엔 겁부터 냅니다. 중독되지 않을까?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
항우울제는 행복감을 느끼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합성을 증가시키고 재흡수를 막아 우울증을 치료합니다. 이 과정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효과가 나타나는 데 2주, 재발방지까지 하려면 5, 6개월 이상은 복용해야 됩니다. 즉각적인 효과가 없는 약은 중독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항우울제는 중독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5개월 이상 꾸준히 항우울제를 처방받은 국내 우울증 환자는 겨우 20%입니다. 조기 중단한 사람은 나중에 다시 약을 먹거나 입원하는 악순환을 보입니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영국도 20년 전엔 우리와 같았습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우울증을 극복하고 치료를 마치는 날 환자에게 꼭 물어봅니다. 혹시 우울증을 통해 얻은 것이 있나요? 한 분의 예외도 없이 있다고 하십니다. “좀 더 성숙한 것 같다”, “새로운 인생을 찾게 됐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우리 인생을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떠나는 우울증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입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