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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565살 서울 옛 배재학당 향나무 목욕하는 날

입력 | 2012-03-27 03:00:00

묵은때 씻고 “아, 시원해” 영양제 먹고 “와, 힘나네”




20일 서울 중구 직원들이 중구 정동의 보호수에 친환경 세제를 뿌리며 ‘목욕’을 시키고 있다. 중구는 새봄을 맞아 보호수 14주 및 소나무 가로수 2128주, 띠녹지 내 16만1770주 등에 대해 30일까지 겨우내 묵은 때를 씻어줄 예정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정동 옛 배재학당 동쪽에 위풍당당하게 높이 솟은 향나무. 무려 565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다. 꼿꼿이 허리를 편 채 17m나 자랐다. 측백나무과로 사계절 푸른 잎이 지지 않는다. 1972년(당시 수령 525년)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됐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서초역 사거리에 서 있는 향나무 ‘천년향(수령 872년)’. 배재학당 향나무는 서열이 20번째쯤 된다. 20일은 이 향나무가 봄을 맞아 1년에 한 번 목욕하는 날이었다. 이날 ‘목욕당번’인 서울 중구 공원녹지과 세척팀과 현장에 동행했다.

○ 김소월의 향나무 초록빛 되찾아

배재학당 향나무는 김소월 시인이 사랑했던 향나무로도 유명하다. 1923년 배재학당을 졸업한 김 시인은 재학 당시 시 ‘진달래꽃’을 발표한다. 그가 향나무 그늘 아래 누워 ‘진달래꽃’의 시상을 떠올렸을지도 아니면 한 소절을 읊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우내 쌓인 먼지로 나뭇잎은 초록빛이 아닌 갈색을 띠고 있어 이런 상상을 떠올리기엔 무리.

차량에 연결된 긴 호스를 인부 2명이 향나무 가까이 끌어왔다. 세척용수와 영양제가 섞인 물이 시원하게 뿜어져 나온다. ‘바이오 클리너’라 불리는 이 세척수는 나뭇잎을 씻어주는 동시에 미네랄 비타민 같은 영양소가 섞여 토양의 공해물질을 중화시킨다.

겨울 제설작업에 쓰인 염화칼슘도 나뭇잎이 숨을 쉴 수 없게 한다. 칠엽수 벚나무 이팝나무와 소나무 등 상록수 나뭇잎에는 염화칼슘이 먼지와 함께 켜켜이 쌓이기 때문이다. 중구 박현주 주임은 “매연이 심한 도시는 미세먼지가 나뭇잎 숨구멍에 붙어 광합성이 원활하지 못하다”며 “정기적으로 목욕을 해야 정상적인 호흡과 대사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 서울시내 나무 28만 그루 단체 목욕

시린 손을 비빌 만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었다. 그러나 물을 맞은 나무는 시원하다는 듯 ‘살랑살랑’ 가지를 떤다. 초록빛이 진해지면서 나무에 봄기운이 돌았다.

나무 목욕 비용은 사람이 목욕할 때보다 높다. 방제차량에 세척수 2000L를 채우는 데 40만 원. 모두 20그루를 씻길 수 있으므로 한 그루당 2만 원가량이 드는 셈이다.

김소월 시인의 향나무뿐만이 아니다. 3월 한 달 동안 서울시내 가로수 및 도로변 녹지대가 묵은 때를 벗는 목욕을 한다. 보호수 261그루를 포함한 가로수 28만4000그루, 가로변에 조성된 띠녹지 350km 등을 세척해 봄맞이 준비를 한다. 가로수 보호덮개 내부의 담배꽁초와 가로변 띠녹지 내 쓰레기, 가로수에 묶어둔 현수막이나 노끈 철사도 걷어낸다.

10년 동안 시내 나무들을 돌봤다는 임철홍 반장(72)은 “작업을 끝낸 뒤 깨끗해진 나무를 보면 그제야 봄이 온 것처럼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