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때 씻고 “아, 시원해” 영양제 먹고 “와, 힘나네”
20일 서울 중구 직원들이 중구 정동의 보호수에 친환경 세제를 뿌리며 ‘목욕’을 시키고 있다. 중구는 새봄을 맞아 보호수 14주 및 소나무 가로수 2128주, 띠녹지 내 16만1770주 등에 대해 30일까지 겨우내 묵은 때를 씻어줄 예정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김소월의 향나무 초록빛 되찾아
배재학당 향나무는 김소월 시인이 사랑했던 향나무로도 유명하다. 1923년 배재학당을 졸업한 김 시인은 재학 당시 시 ‘진달래꽃’을 발표한다. 그가 향나무 그늘 아래 누워 ‘진달래꽃’의 시상을 떠올렸을지도 아니면 한 소절을 읊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우내 쌓인 먼지로 나뭇잎은 초록빛이 아닌 갈색을 띠고 있어 이런 상상을 떠올리기엔 무리.
겨울 제설작업에 쓰인 염화칼슘도 나뭇잎이 숨을 쉴 수 없게 한다. 칠엽수 벚나무 이팝나무와 소나무 등 상록수 나뭇잎에는 염화칼슘이 먼지와 함께 켜켜이 쌓이기 때문이다. 중구 박현주 주임은 “매연이 심한 도시는 미세먼지가 나뭇잎 숨구멍에 붙어 광합성이 원활하지 못하다”며 “정기적으로 목욕을 해야 정상적인 호흡과 대사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 서울시내 나무 28만 그루 단체 목욕
시린 손을 비빌 만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었다. 그러나 물을 맞은 나무는 시원하다는 듯 ‘살랑살랑’ 가지를 떤다. 초록빛이 진해지면서 나무에 봄기운이 돌았다.
나무 목욕 비용은 사람이 목욕할 때보다 높다. 방제차량에 세척수 2000L를 채우는 데 40만 원. 모두 20그루를 씻길 수 있으므로 한 그루당 2만 원가량이 드는 셈이다.
10년 동안 시내 나무들을 돌봤다는 임철홍 반장(72)은 “작업을 끝낸 뒤 깨끗해진 나무를 보면 그제야 봄이 온 것처럼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