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한국법학교수회장
국가기관의 정상적인 작동과 공직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감찰조직은 필요하다. 그 명칭이나 형태와 관계없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이 기관들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기에 더욱 신중한 작동이 요망된다.
민주화 이후 공직사회의 투명성이 강화되면서 청와대와 총리실의 직접적 개입은 최소화됐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초기에 발생한 총리실의 공직자도 아닌 민간인에 대한 사찰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위법행위다. 당시 청와대, 총리실, 검찰은 보이지 않는 윗선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청와대와 총리실의 고위 관계자는 발뺌과 부인으로 일관했다. 마지못해 수사에 나선 검찰은 총리실 공무원 몇 명만 사법처리하는 ‘꼬리 자르기’식 수사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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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민간인 사찰에 청와대 사정라인인 민정비서관실이 아닌 고용노사비서관이 왜 개입됐는지도 미스터리다. 그가 ‘몸통’이라고 자처하고 나서 더 황당하다. 총리실의 하드디스크 파괴 같은 증거 인멸도 자신이 지시했다고 한다. 국가의 사정 지휘체계가 사사로운 비선(秘線) 조직인 영포회나 서울시라인에 의해 작동됐다는 것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국기(國基)를 뒤흔드는 행태인가.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증거 인멸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부실수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결국 정권 말기에 터지고 말았다. 진실은 영원히 묻어둘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입증한다. 검찰은 국가 최고 수사기관으로서 이 사건을 철저하게 재수사해야 한다. 불법이 드러나면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엄중하게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 청와대 눈치나 보는 그런 검찰이라면 국민의 검찰이 아니라 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보면 서울지검 형사부가 재수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적절치 않다. 이 사건은 단순 형사사건이 아니라 정권의 실세가 연루돼 있고, 검찰이 자초한 부실 수사의 불행한 유산이다. 이 같은 사건에 대검 중수부가 검찰의 명예를 걸고 나서야 한다. 그것이 중수부의 존재 이유다. 검찰은 전 정권의 총리이자 현재 야당 대표인 한명숙 씨를 두 번이나 기소했지만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돌아온 업보는 사법개혁 과정에서 야당으로부터 정치검찰이라는 뭇매를 맞고 난도질을 당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땅에 떨어진 검찰의 위상을 회복할 절체절명의 기회다. 검찰이 또다시 국정조사나 특검의 지휘를 받는다면 검찰만의 수모가 아니라 국가적 불행이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한국법학교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