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우주의 한 행성을 배경 삼은 드라마로, 그곳에는 지구인과 비슷한 용모를 가진 존재들이 산다. 그런데 이곳 남자들은 죄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한 지구인이 “당신들, 왜 얼굴을 가리고 있느냐”고 묻자 “방사능 사고 이후 모두 얼굴을 가리게 됐다”고 답한다. 뭔가 비밀이 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해프닝으로 한 남성의 마스크가 벗겨진다. 당황하면서 손을 올리지만, 얼굴을 감추지는 못한다. 그런데 전혀 흉측하지 않다. 영화배우에 가까운 얼굴이다. 왜 숨겼을까. 방사능 사고로 유전자에 집단적인 변형이 생기면서 모든 남성이 똑같은 얼굴을 갖게 된 것이다. 흉측한 게 재앙이 아니었다. 두려운 것은 정체성과 개성의 상실이다. 모두가 똑같아지는 일, 재앙은 그것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에게 화가 난다는 점부터 고백해야겠다. 대부분의 성형외과 의사들은 외모의 선천적 또는 후천적 이상을 치료하는 전통적 의미의 성형수술만 하고 있지는 않다. 문화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아름다움의 중요한 상징인 여성의 얼굴을, 치료 외의 목적으로 매만지는 일은 의술인 동시에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세상 어떤 비즈니스가 그 정도로 상품 개발에 무심한가. 성형을 원하는 여성들이 무언가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모델’을 의사들은 확보하고 있는 것일까.
운동화 하나, 옷가지 하나도 비슷한 것을 찾기 어려운 시대다. 만약 여성들이 죄다 김○○의 눈, 이○○의 코, 박○○의 윤곽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의사들의 책임이 면제되진 않는다. 기계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뒷골목의 무허가 장인이 아니라, 적어도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본성에 대해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미학(美學)이란 학문이 있다. 이 학문의 역사는 특정 사물에서 아름다움의 객관적 기준을 찾으려는 시도를 포기해 온 과정과 일치한다. 아름다움이란 게 대상 자체보다 감상하는 이의 ‘태도’에 더 의존한다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스타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 시청자를 사로잡는 그들의 매력과 아름다움은 이목구비 배치의 객관적 특성 정도로 환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정도 부분적인 특성으로는 절대 자극할 수 없는 시청자들의 ‘미적 태도’를, 많은 스타들이 이미 충분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자극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