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현 교육복지부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기자에게 자료를 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 곤혹스러워했다.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산하기관의 어려움을 이해해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기자가 원한 자료의 정식 명칭은 ‘국민연금 노후준비종합진단 프로그램 연구개발’. 재무 건강 정서 여가 등 네 가지 영역별로 30여 개 질문을 스스로 풀어봄으로써 국민이 은퇴를 얼마나 제대로 준비하는지 점검하는 보고서다. 점수별로 본인이 어떤 유형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공단은 이 설문지를 141개 행복노후설계센터에 비치하고 가입자들이 자가진단을 하도록 도울 예정이었다. 센터를 방문한 1092명을 대상으로 지표 신뢰도 검사까지 마쳤다. 홈페이지에도 올릴 방침이었다.
공단의 자가진단서비스 제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내 연금’ 사이트를 통해 재무영역과 심리적인 부분을 아우르는 자가진단지를 올렸다. 다만 해외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항목과 내용이 조금 복잡했다. 새로 개발한 설문지는 보다 간단한 ‘한국형 노후준비지표’를 마련하기 위해 공단이 준비했다.
완성 단계의 이 프로그램을 복지부가 뒤늦게 알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임채민 복지부 장관이 “은퇴와 관련해 지수나 프로그램을 개발하라”며 복지부 공무원들을 자주 독려하던 때였다. 이 과정에서 공단의 프로그램을 알게 된 복지부 관계자들이 이를 통째로 넘기라고 공단에 요구한 것이다.
‘지표 내용을 공개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복지부 관계자는 “장관님의 관심이 크기 때문에 4월 이후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보도가 나가면 너무 이르다. 나중에 기자들을 상대로 복지부에서 브리핑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복지부는 17일 “국민연금공단의 공을 가로챈 것이 아니라 같이 개발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누가 기자에게 말했느냐’며 산하기관을 문책했다. 장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산하기관인 공단을 들들 볶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다.
노지현 교육복지부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