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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본 이 책]우주 밖 또 다른 우주에 내 판박이가…

입력 | 2012-02-11 03:00:00

◇ 멀티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박병철 옮김/ 576쪽·2만5000원·김영사




137억 년 전 섬광처럼 생겨난 우주는 수 많은 우주 중 하나일까. 아니면 단 하나의 ‘천구’일까. 김영사 제공

본래 유니버스(우주)는 ‘하나’의 ‘천구(天球)’를 뜻한다. 하늘의 모든 별이 둥근 천구에 붙어서 회전한다고 믿었던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에게 우주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세상 전체’였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은 우주에 들어 있어야 하고, 우주에 없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가 없다고 믿었다. 그런 우주가 하나뿐인 것은 하늘에 태양이 하나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현대 이론물리학자와 우주론학자들이 역설적이고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을 포함하는 우주가 하나 이상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저 한두 개가 더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 우리 우주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우주들이 끊임없이 새로 등장하고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주장이 다분히 사변적인 주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아무런 모순이 없는, 과학적이고 필연적인 결론이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확률로 설명하는 양자역학은 뉴턴적 확실성에 익숙한 우리에게 난처한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다중세계 해석이다. ‘이곳’에서 관찰되는 입자가 오즈의 마법사가 데려다준 다른 우주에서는 ‘저곳’에서 관찰된다. 서로 다른 우주에서 모든 일이 동시에 서로 다르게 진행되는 ‘양자적’ 다중우주는 공상 소설의 훌륭한 소재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단순히 우주가 공간적으로 무한히 광대하다는 사실 자체가 수학적으로 다중우주를 요구하기도 한다. 아득하게 먼 곳에 존재하는 평행우주에 내 판박이가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광대한 세상은 그런 평행우주들을 ‘누벼 이은’ 다중우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빅뱅(대폭발)에서 시작된 우주가 빠르게 팽창한다는 우주론에서도 ‘인플레이션’ 다중우주가 등장한다. 영원히 지속되는 우주적 인플레이션에서 무수히 많은 거품 우주가 탄생하고, 우리 우주도 그런 거품 중 하나다.

멀티 유니버스(왼쪽), 브라이언 그린(오른쪽)

자연의 모든 법칙을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끈이론은 다중우주의 보고(寶庫)다. 우리 우주는 더 높은 차원의 공간을 떠다니는 수많은 3차원 ‘브레인’ 다중우주 중 하나다. 그런 브레인 우주들이 주기적으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따라 무수히 많은 ‘주기적’ 다중우주가 등장할 수도 있다. 끈이론이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만나면 감춰진 차원에서 다양한 ‘경관’ 다중우주가 도출된다.

다중우주가 고차원의 경계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홀로그램’처럼 투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의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능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다중우주도 있다.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도 있고, 수학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궁극적’ 다중우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다양한 다중우주 이론들이 실험적으로 확실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다. 다중우주의 존재를 밝혀내는 것이 ‘다윈 혁명 이후 과학사의 최대 난제’라는 뒤표지의 주장은 아직은 성급한 것이다. 과연 다중우주에 어떤 물리법칙이 적용되고, 우리가 인식하는 실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사실은 우리가 다중우주의 모든 신비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인간 중심적 사고에 젖어 있던 우리에게 현대 물리학이 제시하는 다중우주가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수없이 많은 우주들 중 어느 평범한 우주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별들 중 어느 평범한 행성에 살게 된 ‘한 점’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학의 끝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그런 과학을 생각해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