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은 ‘연인의 날’이기도 했다.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정월대보름의 탑돌이 풍속은 청춘남녀가 탑을 돌다가 눈이 맞으면 사랑을 나누던 신나는 축제였다. 생면부지의 남녀가 탑을 돌다가 서로 끌리면 숲으로 들어가 야합(野合)을 하고, 정분이 들면 부모의 반대나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지금보다 더 개방적인 연애를 즐겼다. 탑돌이 풍속은 조선시대까지 번성했으나, 한양 원각사의 탑돌이로 염문이 끊이지 않자 유학자들의 날선 상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세조가 금지령을 내렸다.
유부녀들도 이 날만큼은 마음껏 자유를 즐겼다.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언덕에 올라가 달뜨는 것을 기다리거나,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수표교를 밟는 행렬을 따라다녔다. 달맞이가 끝나면 남정네와 여인네들이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했는데, 여인네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해서 남정네들이 슬그머니 져주었다. 달은 음(陰·여성)으로 생산과 풍요를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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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뭄이 들면 달 밝은 밤에 여성들이 마을 앞산에 올라 집단방뇨를 했다. 소변을 보는 것은 비를 내리는 행위와 유사했으며, 밝은 달빛에 엉덩이를 노출하는 것은 양(陽·남성)에 해당하는 하늘 신을 성적으로 자극해 비를 뿌려주길 소망한 것이다.
새봄을 맞아 처음으로 씨앗을 뿌릴 때면 마을의 수총각(首總角)이 알몸으로 쟁기질을 했다. 마을 총각의 우두머리로 힘세고 건장한 총각이 알몸으로 쟁기를 끌어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한 것은 음(陰에 해당하는 땅의 신과 벌이는 일종의 유사 성행위였다.
김재영 퍼스트비뇨기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