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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안동 용계리 700년 은행나무

입력 | 2012-01-14 03:00:00

15m들어올린 호수위의 노거수… 물에 잠긴 옛마을을 그리워할까




나무는 대개 세월이 흐를수록 몸집이 커지기 마련이다. 때로 장수를 하게 되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한다. 그런 나무들을 찾아가는 일은 녹록하지 않을 때가 많다. 노거수(老巨樹)가 도시에 살아남아 있는 경우가 흔치 않은 탓이다. 지도와 내비게이션이 한계에 부딪힌다. 물어물어 손으로 길을 더듬듯 찾아가는 어느 순간, 멀찍이 눈에 들어오는 나무의 강렬한 첫인상. 그건 마치 밤바다를 표류하는 조각배 앞에 나타난 등대 불빛처럼 감동적이다. 그렇게 작년 한 해 전국의 노거수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기쁨을 맛보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나무의 이야기를 오늘 해보려고 한다.

○ 유압잭으로 700년 은행나무 들어올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 나는 외국에서 살았던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얻은 소중한 깨달음 중 하나가 ‘향수(鄕愁)의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분단으로 실향민이 된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댐 공사로 고향이 물에 잠긴 사람들도 마음이 허전할 것이다. 지척에 고향이 있지만, 그 기억을 물속에 묻어두고 한없이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란.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는 그런 상념이 가득한 고장이었다.

용계리는 와룡산과 용계천 사이의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농촌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은행나무 하나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마을은 임하댐(1993년 말 준공)이 생기면서 물밑에 잠기게 됐다. 그렇지만 700년 된 은행나무만은 용케 화를 면했다. 수장하기엔 너무 아까운 노거수를 살리자는 민의가 모여 청와대의 도움까지 이끌어낸 덕이었다.

은행나무 구조작업은 ‘전설의 나무박사’로 불렸던 고(故) 이철호 박사의 수목이식전문업체(대지개발)가 맡았다. 이 박사는 이식 후 6년 안에 나무가 죽으면 공사비 전액을 변상한다는 각서를 썼다. 그런데 나무가 너무 크고 무거운 데다 주변에 제대로 된 길도 없었다. 결국 나무를 뿌리째 들어올린 후 그 아래에 흙을 채워 넣기로 했다. 이런 공법을 상식(上植·올려심기)이라 한다.

은행나무의 무게는 1250t. 작업자들은 대형 트럭을 들어올릴 때 쓰는 유압잭으로 나무를 하루 55cm씩 밀어 올렸다. 동시에 뿌리 아래를 흙으로 메우는 작업도 이뤄졌다. 결국 나무는 3년의 작업과 23억 원의 거액이 소요된 뒤 1993년 새 자리를 잡게 됐다(나무를 들어올리는 기간은 2개월이었지만, 사전과 사후 작업이 꽤 많이 필요했음). 원래 있던 자리에서 15m 높은 위치였다. 이것은 실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상식 공사였다.

○ 초등학교 운동장에 서있던 날들


내가 찾은 한여름 임하호는 많은 비 때문이었는지 저수량이 꽤 많았다. 나무그늘 아래 서서 나무를 올려다봤다. 물속 용계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서 있던 날들을, 나무는 기억하고 있을까. 정자나무로 마을사람들의 오랜 쉼터가 되어 주었던 나무는 이제 지나가는 길손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잠깐씩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혹시 그럴지도 몰라. 깊게 뻗어나간 뿌리가 그 옛날 학교 운동장의 흙까지 닿아 추억을 어루만지고 있을지도 몰라.

나무야, 보란 듯 살아남으렴. 혹시라도 미래의 어느 날 댐이 없어지고 물이 빠지면, 다시 마을이 생길지도 몰라. 그렇게 사람들이 돌아오는 날, 가장 높은 곳에서 커다란 그늘이 되어주기 위해서라도….

돌아오는 길에 임하호 주변 순환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아름다운 호수의 풍광 때문에 몇 번이고 차를 멈춰야 했다. 하지만 호수 한가운데 있는 멋들어진 바위섬이 과거 수려하던 계곡의 꼭대기였음을 떠올리자 아쉬움이 밀려왔다. 나는 어느 물가에 앉아 수몰민의 애환을 노래한 ‘물의 노래’란 시(이동순 지음)를 떠올렸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가리
죽어 물이나 되어서 천천히 돌아가리
돌아가 고향하늘에 맺힌 물 되어 흐르며
예 섰던 우물가 대추나무에도 휘감기리
살던 집 문고리도 온몸으로 흔들어 보리

(중략)

구석에 서성이던 우리들 노래도 물속에 묻혔으니
두 눈 부릅뜨고 소리쳐 불러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그리움만 나루터에 쌓여갈 뿐

나는 수몰민, 뿌리째 뽑혀 던져진 사람
마을아 억센 풀아 무너진 흙담들아
언젠가 돌아가리라 너희들 물 틈으로
나 또한 한 많은 물방울 되어 세상길 흘러흘러
돌아가 고향하늘에 홀로 글썽이리

멀리 바라본 호수 표면에는 잔잔한 바람 속에 눈부신 햇살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