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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발견한 ‘국보중의 국보’ 소유권 소송이후 흔적 사라져

입력 | 2011-10-26 03:00:00

상주서 빛 본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금 어디에…
해외유출됐나, 땅속에 숨겼나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 그동안 간송미술관에 있는 해례본이 유일했다. 그런데 2008년 7월 경북 상주에서 해례본 한 권이 발견됐다. 간송미술관 것보다 상태가 더 좋았다. 문화재계는 흥분했다. 하지만 곧바로 상주의 골동상 배모 씨와 조모 씨 사이에 소유권 분쟁이 일어났다. 올해 6월 대법원은 “해례본을 절취한 배 씨는 조 씨에게 돌여주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배 씨는 이를 거부한 채 해례본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해례본이 해외로 반출됐거나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과 검찰은 배 씨가 입을 열도록 묘안을 짜내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 해례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무사히 찾아낼 방법은 없을까.》

배씨의 집

“집에서 고서적 한 권이 나왔는데 국보 문화재로 지정받고 싶습니다.”

2008년 7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눈길을 끄는 글이 올라왔다. 경북 상주시의 골동상 배모 씨(48)가 올린 글의 내용은 믿기 힘든 것이었다. 문화재청은 현장 조사 계획을 세웠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도 감정에 나섰다. 학계는 깜짝 놀랐다. ‘물건’은 세상에 하나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학계와 배 씨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 뒤인 2008년 8월, 상주의 골동품가게 민속당의 주인 조모 씨(66)가 “저 해례본은 배 씨가 내게서 훔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씨는 “배 씨가 고서적 두 상자를 30만 원에 사 가면서 해례본을 몰래 함께 넣어 가져갔다”고 했지만 배 씨는 “우리 집에서 나왔다”고 반박했다.

3년여에 걸쳐 해례본 소유권을 둘러싼 고소와 맞고소, 민사소송(물품인도 청구소송)이 이어졌다. 2011년 6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배 씨가 훔친 것이 맞으니 해례본을 조 씨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배 씨는 움직이지 않았다. 해례본은 다시 수면 아래 잠겼다. 검찰과 법원이 세 차례 강제집행과 압수수색을 했지만 찾는 데 실패했다. 배 씨는 9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그는 해례본이 어디 있는지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국보급 문화재인 상주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금 과연 어디 있을까. 해외로 유출된 것은 아닐까. 훼손되지는 않았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화재 관계자들 안팎에선 해례본이 수십억 원에 거래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배 씨가 처벌받아 형을 살더라도 거액의 대가를 쥘 수 있다는 ‘셈’을 할 것이라는 추정이 떠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해외 밀반출 징후도 포착됐었다”면서 “검찰과 머리를 맞대고 해례본 회수 방법을 다각도로 고심 중이다”라고 말했다. 극적인 해결책이나 향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며 숨은 해례본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배 씨가 낱장으로 뜯어 비닐에 싸 분산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 박지희 연구사는 “종이 문화재는 유기질이기 때문에 습기와 빛에 민감하다. 습도가 높으면 곰팡이가 생기고 낮으면 바스라질 수 있다”며 “비닐에 보관하면 통풍이 되지 않아 특히 더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묘안을 찾아 해례본의 소재를 알아낸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로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해례본은 조 씨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가도록 돼 있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은 해례본이 ‘장물’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도난당한 서지 문화재를 불법 유통하는 사람들이 소장자를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일부를 뜯어내는 일이 많은데 해례본도 일부 뜯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만약 장물이 맞다면 해례본의 주인을 찾는 과정을 밟아야 하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국가에 귀속하는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 전문가들 보호대책 고심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배모 씨가 해례본을 내놓지 않고 있는 황당한 상황 때문에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를 보호하기 위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대부분 전문가들의 의견은 문화재의 중요성을 감안해 우선 이 해례본을 확보해 놓고 봐야 한다는 것. 배 씨에게 금전적 법률적 보상을 하더라도 해례본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종의 플리바기닝(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협상을 통해 형량을 경감하거나 조정하는 제도)으로 볼 수 있다. 검찰은 “우리나라에 플리바기닝 제도가 없지만 배 씨가 (물건을) 내놓고 재판을 받거나, 수사에 협조하면 선처를 받을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변호사 비용을 대주거나 형량을 조정해 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더 적극적으로는 사전 경매를 통해 일정 정도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방안도 충분히 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서울 인사동의 한 고서적상은 “현실적으로 배 씨에게 금전적 보상이 돌아가지 않고선 훈민정음 해례본을 양지로 끌어내기 어려울 것 같다. 이 문제를 놓고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강순애 한성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도 “배 씨의 형량을 줄여 주는 등 회유를 통해서라도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며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도 사유화돼 있는 상황인데 이번 해례본은 국가에 귀속해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국민 모두 열람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금전적 보상 등의 방식은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강신태 문화재청 문화재사범단속반장은 “돈을 쥐여주는 것은 도둑을 키우는 꼴인데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법원이든 검찰이든 피해 물품에 해당하는 문화재를 일단 눈앞에 내놓도록 하고 관련자의 죄를 묻는 것이 순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학자료조사실장도 “금전적 보상으로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문화재를 돈으로 보는 인식 때문에 생긴 일인데 이를 금전적 보상으로 해결하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결 방안에 대한 견해는 달랐지만 전문가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지금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화재 지정과 유통에서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물건을 배제하는 ‘출처주의’ 제도와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 골동상 배씨 유치장서 만나보니


비가 올 것처럼 끄물거리는 21일 오전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경북 상주시로 내려가 상주경찰서 유치장에서 배모 씨를 면회했다. 가슴까지 오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그는 하늘색 반팔에 밝은 회색 면바지 차림이었다. 맨발에 흰 고무신을 신은 채 왼손에 10cm가량 두께의 서류뭉치를 안고 있었다. 기자의 겉옷을 보고 그가 말을 꺼냈다. “밖이 많이 추워졌나보네요.” 그가 9월 2일 이곳에 온 이후로 기자는 처음 만난다고 했다.

“내가 훔쳤다면 국보 지정 신청도 안 했겠죠. 해외로 튀어도 벌써 튀었고요. 그 물건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날 여기(유치장)로 몰아넣었어요.” 그는 각종 고소장과 진술서 등을 뒤적이다 “그 물건의 가치가 최소 1조 원”이라는 말도 덧붙이며 “물건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날 풀어주고 (물건의 주인인) 나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것”이라고 했다.

해례본 훼손 위험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갑자기 두 손으로 눈을 감싸고 웃더니 “내가 여기 있는 상태에서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일단 물건을 보존 처리한 뒤 법적 절차를 밟을 생각은 없느냐는 기자의 말엔 “그걸 어떻게 믿느냐”고 반문했다. 그러곤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내가 평생 갖고 있을 수도 없고, 결국엔 국가에 돌아가지 않겠느냐. 다만 가는 방법이 문제”라고 말했다.

경찰서를 나와 각종 토기와 고서, 골동품이 쌓여 있는 민속당에서 조모 씨를 만났다. 조 씨는 “배 씨가 숨긴 장소를 말하지 않아 답답하다. 그는 의심이 많아 가족에게도 맡기지 않고 비닐로 싸서 항아리 등에 넣은 뒤 땅에 묻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를 몰랐느냐고 물었더니 “오래되고 좋은 고서인 줄은 알았지만 해례본이 뭔지 몰랐다”고 했다. 물건이 돌아온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만 답했다.

상주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20여 분 달려가 배 씨의 집으로 갔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집배원은 “그 ‘물건’ 때문에 찾아왔느냐”며 기자에게 “물건이 진품이냐”고 묻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 훈민정음 해례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다.

흙과 돌로 짓고 파란 지붕을 올린 배 씨의 집 앞엔 각종 고서와 석조물 등의 골동품이 놓여 있었다. 잠시 내려와 머무르고 있다는 배 씨의 형은 “그 물건이 나왔을 땐 집에 없어서 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이 이쪽 일(골동품 수집) 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싸우기도 했지만 동생 일이니 어떻게 할 수 없다”고만 했다.

상주=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