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조명-무대 장치 화려하진 않지만…◇ 佛 국립극단 ‘상상병 환자’ ★★★★☆
중용의 무대 미학을 보여준 연극 ‘상상병 환자’. 하녀 투아네트(왼쪽)를 연기한 뮤리엘 마예트 씨는 프랑스 국립극단 ‘코메디 프랑세즈’의 대표이기도 하다. 오른쪽은 주인공 아르강 역의 레타르 지루동 씨. 국립극장 제공
330년이 넘는 역사와 3000개 이상의 레퍼토리를 가진 이 극단이 보여준 무대는 의외로 소박했다. 음향이든 조명이든 볼거리든 차고 넘치는 게 미덕인 양 여겨지는 국내 공연문화에 익숙해진 탓인지 처음엔 모든 게 허전하게 느껴졌다. 조명은 희미했고 간간이 들려오는 음향도 또렷하지 않았다. 커튼 같은 흰 천을 스태프들이 직접 열고 닫는 무대막도 초라해 보였다.
유일하게 무대를 꽉 채운 것은 배우들의 존재감이었다. 마이크를 착용하지 않았는데도 1층 맨 뒷좌석에서까지 대사가 뚜렷이 들렸다. 믿을 수 없어 극장 측에 확인했더니 원래 이 극단 배우들은 마이크를 쓰지 않지만 대사 전달이 힘든 해오름극장의 상황을 반영해 세트와 바닥 등 다섯 곳에 마이크를 설치했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놀라운 발성이 아닐 수 없었다.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 것은 결말이 뻔한 상황극을 재치 있게 끌고 간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였다. 멍한 표정으로 온갖 미사여구가 곁들여진 현란한 장문의 대사를 한숨에 읊어내는가 하면 기막힌 타이밍에 관객의 허를 찌르는 제스처로 중간 휴식 없이 2시간 남짓 진행된 공연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무대도 꽉 차게 느껴졌다. 모든 요소들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느껴졌다. 자극적인 조미료를 제거했을 때 재료의 원래 맛이 드러나듯, 심심한 듯한 무대에서 희곡의 완성도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동안 국내 공연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던 몰리에르 희극이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뛰노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값진 무대였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