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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동언]“통증도 질병”…참는 게 미덕 아니다

입력 | 2011-10-14 03:00:00


문동언 대한통증학회장 가톨릭대 의대 교수

애플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혁신의 아이콘’ 잡스를 무너뜨린 췌장암에 대해 여론이 주목하는 듯하다. 하지만 암환자에게는 암 자체도 문제지만 암으로 인한 통증이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 바로 ‘암성통증’이 그것이다. 암성통증은 암 전이로 인한 통증을 포함해 암 치료로 인한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 등으로 생기는 통증이다. 국내에서 전체 암환자의 절반이 넘는 52.1%, 말기 암환자의 경우 80% 이상이 통증을 호소한다. 암환자의 55%는 통증으로 일상생활에 장애를 받고, 43%는 수면장애를 동반하는 등 암환자의 통증은 그 자체로 환자의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이런 암성통증 외에도 통증은 살면서 누구나 겪는 증상으로 원인과 종류는 다양하다. 대부분의 통증은 신체적인 손상에 의해 나타나 손상된 부위가 치료되면 통증도 자연히 낫게 된다. 최근에는 원인이 되는 상처가 나았지만 동일한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통증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통증이 오래되면서 신경계의 변화를 초래하는 신경병증통증은 난치성으로 진단과 치료가 쉽지 않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적극적인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 면 말초신경 외에 척수신경과 뇌신경에까지 신경 손상이 생겨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도 통증을 느끼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조기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질환을 악화시키고 수면장애, 만성피로, 우울감 등으로 환자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2차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1998년 세계보건기구(WHO) 아시아 등 5개 대륙 환자 2만6000명 조사 결과). 국내 만성통증 환자가 성인 인구의 약 10%인 250만 명으로 추정되는 것을 볼 때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을 수 있다.

만성통증의 사회경제적 부담도 상당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추산한 1998∼2000년 만성통증으로 인한 비용은 2조2000억 원으로 같은 시기의 암(2400억 원)의 약 10배에 이르고 뇌혈관 질환(6100억 원)이나 고혈압 등 심혈관계 질환(2900억 원)보다 월등히 높았다.

통증은 개인적인 감수성 차이가 많고 정신적 정서적 요소가 많이 관련돼 있어 다각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참는 게 미덕이라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우리 사회에 당연한 것처럼 적용되고 있어 문제다. 통증환자가 통증을 느낀 후 바로 전문병원을 찾는 경우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대한통증학회가 통증환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42명(42.6%)은 전문적인 통증치료를 받는 데 6개월 이상 걸렸고 323명(31.1%)은 1년 이상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통증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꾀병으로 오해를 받지만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이라고 일컬어지는 출산의 고통을 7이라고 볼 때 통증환자들은 9 또는 10 강도의 통증을 호소할 정도로 고통이 극심하다. 무엇보다 통증은 그 자체가 질병이라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문동언 대한통증학회장 가톨릭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