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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윤종]잡스와 다빈치적 인간

입력 | 2011-10-07 03:00:00


유윤종 문화부장

스티브 잡스의 삶이 비범한 것은 단지 탁월한 경영자, 개발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자의 딸이 어렸을 때, 아이에게 잡스는 무엇보다도 ‘토이스토리를 만든 픽사의 최고경영자(CEO)’였다. 그후 잡스에 관한 책을 읽고서는 그가 ‘PC의 아버지’였다는 데 신기해했고, 그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열풍의 주역으로 떠오르자 열광했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죠?”

그렇다. 잡스는 초년시절부터 한 자리만을 차고앉은 정보기술(IT)계의 ‘호족’이 아니었다. 애플을 세워 성공했고, 쫓겨나 성공했고, 돌아와 또 성공했다. 후세는 PC, 컴퓨터 애니메이션, 태블릿PC의 탄생에 동일한 인물의 손길이 깃들었다는 데 경탄할 것이다.

역사상 한 인물이 상이한 과업에서 이름을 남긴 일이 없지는 않다. 태양계의 탄생에 대해 처음 설득력 있는 이론을 내놓은 사람은 ‘순수이성 비판’으로 낯익은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였다. 뉴턴의 자연역학에 큰 관심을 가졌던 그는 이를 바탕으로 태양계 생성을 설명한 ‘성운설(星雲說)’을 내놓았다. 후세에 많은 수정 보완이 가해졌지만, 지금도 이는 태양계의 기원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전제가 되고 있다.

보험업의 근간이 되는 요율표(料率表)를 개발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핼리 혜성’으로 친숙한 에드먼드 핼리다. 그는 통계에 천착한 사람이었다. 혜성에 관한 기록이 특정 기간을 주기로 되풀이된다는 통계적 사실에서 그는 혜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천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특정 지역의 수명과 발병률 등을 명확한 수치로 환산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보험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성과를 이뤄낸 인물들을 우리는 ‘다빈치적 인간’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같은 분류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 아니었다. 동시대인에게 그의 성과는 회화 한 분야로 한정됐다. 해부학, 역학, 건축학 등에 대한 그의 깊이 있는 탐구는 그의 작업 노트에 숨어 있다가 재발견을 기다려야 했다.

오늘날 다빈치나 칸트, 핼리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성과를 이뤄내기란 훨씬 힘들어졌다. 각각의 분야에 대한 지식이 너무도 크게 축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잡스처럼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는 인재가 지금도 나타난다. 무엇이 비결일까.

부지런함과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정신은 기본이다. 잡스는 위대한 ‘상상가’였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어렵다.” “뒤를 돌아보면서만 점을 연결할 수 있다. 그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는 데 그게 상당히 괜찮다면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고 다른 놀라운 일을 해야 한다….” 그가 남긴 어록 일부다.

초경쟁으로 함축되는 오늘날 우리 사회도 잡스와 같은 르네상스적 인간을 배출할 수 있을까. 여러 대학이 ‘융복합’ ‘학제 간 교류’를 외치고 있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1997년 애플 CEO로 복귀한 잡스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다르게 생각하게 된 애플은 ‘예전 것보다 나은’ 제품이 아니라 ‘예전에 보지 못한’ 제품을 내놓으며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다른 생각’을 더 폭넓게 용납할 수 있을 때 우리 기업은 애플을, 우리 사회는 선발 선진국들을 따라잡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앞질렀다고 선언하게 될 것이다.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