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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용석]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써야 하는 이유

입력 | 2011-09-28 03:00:00


정용석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교육과학기술부가 교과서 서술지침에서 ‘민주주의’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하자 지난달 ‘역사교육과정 개발정책연구위원회’ 일부 위원이 반발해 사퇴했다. 그들은 반대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시장과 경쟁, 남북대결을 강조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됐고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용어로서 교육현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 등을 들었다.

차제에 두 용어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민주주의란 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Demokratia란 단어로서 왕정이나 귀족정에 반하는 평민(Demo) 지배(kratus)라는 뜻이다. 주권재민(主權在民) 사상이다. ‘민주주의’ 용어는 그 후 자유 민주주의, 무산계급 민주주의, 제3세계 민주주의 등으로 분화됐다.

첫째, ‘자유민주주의’는 근대국가에 이르러 주권재민 사상에 바탕을 두고 구미(歐美) 국가에서 자유경쟁 체제로 진화되었다.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 시장경제, 복수정당, 신앙자유 등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를 강조한다. 한국도 그에 속한다. 우리 헌법 전문(前文)과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다고 못 박았다.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적 평등을 강조하면서도 복수정당제 등 자유경쟁 체제라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에 속한다.

둘째, ‘민주주의’ 용어는 19세기 카를 마르크스에 의해 무산계급 지배 독재체제로 변질됐다.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선언에서 공산혁명을 무산계급에 의한 ‘민주주의’ 투쟁이라고 했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한을 비롯한 공산 독재국가들은 공산당 1당 지배에 의한 독재체제를 ‘민주주의’라고 한다. 북한은 국호에도 민주주의 용어를 집어넣었다.

셋째, 민주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신생 독립국들에 의해 1당 지배체제로 둔갑됐다. 신생국들은 자유민주주와 공산주의를 모두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1당 정치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재스민 혁명으로 이미 붕괴되었거나 붕괴돼 가고 있는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시리아 등의 1당 독재체제들이 그에 해당한다.

일부 교과부의 자문기구 위원들이 ‘자유민주주의’가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용어라고 주장한 것은 억지다. 이미 45년 전인 1966년 캐나다 토론토대 맥퍼슨 교수는 저서 ‘민주주의의 실제 세계(The Real World of Democracy)’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명료하게 정립했다. 그의 저서는 널리 알려져 한국 대학에서도 많이 읽히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남북 대결을 강조한 사람들의 전용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이 용어는 정치체제의 특성을 말할 뿐 남북 대결과는 무관하다.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옳다는 사람들 중에는 남북 대결 대신 남북 화해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라고 할 경우 세 가지 부작용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한다. 우선 대한민국의 체제적 우월성을 상징하는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도려낸다는 것은 자해 행위다. 다음으로 남한이 북한의 민주주의 호칭을 따라감으로써 두 체제가 동일시돼 북한도 남한 수준의 민주체제라고 착각하게 한다. 끝으로 북한을 남한 수준의 민주체제로 착각하게 함으로써 북한의 대남적화 책동 경계심을 흐리게 하고 안보의식을 약화시킨다.

대한민국을 북한의 무산계급 독재체제 용어로 쓰이는 ‘민주주의’로 호칭해서는 안 된다. 헌법에도 명시돼 있으며 북한과 차별화되고 자유와 번영이 넘치는 ‘자유민주주의’로 써야 한다.

정용석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