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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연세대 창의인재전형 집중분석

입력 | 2011-09-20 03:00:00

내신-수능 배제… 진로맞춤형 비교과활동으로 합격!




인천박문여고 손서영 양(사진 왼쪽)과 서울 인창고 김남윤 군은 진로에 맞는 일관성 있는 비교과 활동경력과 폭넓은 독서를 통해 얻은 사고력을 바탕으로 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해 연세대 창의인재전형에 합격했다.

《60.6 대 1. 올해 신설된 연세대 입학사정관전형인 창의인재전형에는 30명 모집에 1800여 명이 몰렸다. 한 달여간의 평가기간을 거쳐 7일 합격자를 발표했고 12월 최종합격자 등록만 남겨두고 있다. 이 전형이 주목받은 이유는 고교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반영하지 않고 △추천서 △우수성 입증자료 △창의에세이 △학교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면접 점수를 종합평가해 합격자를 결정했기 때문. 정량화된 수치가 아닌 학생의 잠재력을 보고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목표에 맞춰 이 전형은 어떤 방법으로 학생을 평가했을까? 최종 합격한 인천박문여고 3학년 손서영 양(19)과 서울 인창고 3학년 김남윤 군(18)을 통해 창의인재전형을 살펴보자.》
○에세이 주제…세종대왕이 외계인을 만났다면?


창의인재전형은 1단계 서류평가에서 내신 성적을 보지 않고 추천서와 고교시절 활동 포트폴리오인 우수성 입증자료만을 받았다. 사설기관과 연계된 해외봉사활동과 리더십 프로그램 등은 평가에 반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창의에세이 시험을 치러 세 가지 항목의 점수를 합산해 약 3배수의 1단계 합격자를 선정했다. 창의에세이 시험은 인문·자연계열 공통주제로 치렀다. 시험문제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라는 말과 연관될 수 있는 단어를 5개 이상 나열하고 왜 이 단어들이 연상되었는지 각각 설명하시오. △2040년도에 세종대왕과 외계인이 만나는 상황을 가정하고 이 상황에서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이루어질지 서술하시오가 출제됐다. 지원자는 줄이 없는 A3 용지에 분량제한 없이 120분간 두 가지 주제의 답안을 작성했다.

2단계 면접은 우선선발 대상과 일반선발 대상으로 나눠 진행됐다. 1단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우선선발 대상으로 선정됐다. 교수면접관 2인과 입학사정관 1인은 지원자가 제출한 서류에 대한 확인 질문을 중심으로 약 30분간 면접을 치렀다. 일반선발 대상자는 2인의 교수 면접관이 약 60분간 실시하는 심층구술면접을 봤다. 면접장에 들어가기 10 분전 안내를 받고 본인이 1단계에서 제출한 우수성 입증자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에 대해 5분간 발표했다.

○허를 찌르는 질문…독서를 통한 배경지식으로 극복!

손서영 양은 일반선발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치르고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했다. 손 양은 일찌감치 정치외교학과로 진학목표를 세우고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관련 비교과활동을 했다. 우수성 입증자료에는 △전교학생회장 △외교·정치·경제 포럼 참가 △청소년 정책을 제안하는 참여위원회 활동 △다문화가정 초등생 대상 멘토링 봉사 등을 담았다.

창의에세이는 평소 학교논술수업과 독서를 통해 쌓은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이슈와 연결해 논술형식으로 풀어냈다. 첫 번째 문제는 ‘도요타 리콜사태’ ‘색안경’ ‘찰리 채플린’ 등을 썼다. 도요타 리콜사태는 ‘차량 제작단계의 결함에 빨리 대응하지 못하고 작은 비용을 아끼려 계속 끌고 가다 더 큰 문제를 일으켜 매몰비용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썼다. 색안경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인종적 특성을 첫 단추에 비유하며 인종적 편견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비용의 문제로 풀어냈다. 두 번째 주제는 한글이 다른 문자보다 스마트폰 등 미래사회 기기에 빠르게 입력할 수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언어의 우수성으로 한국이 강대국이 될 가능성을 과거 서구사회의 역사를 근거로 들며 썼다.

면접장에서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한 마을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했는데 오직 한 집만 무사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외과를 졸업해서 28세에 여성 국회의원이 됐는데 다선의 50대 남성 국회의원이 ‘경험 없는 젊은 의원이 정치를 아느냐’며 모욕적인 발언을 했을 때 10초 안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면? 등의 질문을 받았다.

손 양은 “독창적인 답을 하려고 고집하기보다는 문제와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뒀다. ‘정치 경험보다는 인물의 자질과 신념이 중요하다’는 다소 원론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에 맞는 근거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야기했다”면서 “학창시절 사마천의 ‘사기’부터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까지 폭넓은 독서를 하며 쌓은 배경지식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꿈꾸는 철학도… 우선선발 최종합격!

김남윤 군은 철학을 바탕으로 한 영화감독의 꿈과 학업계획을 적극 어필해 우선선발 대상으로 철학과에 합격했다. 우수성 입증자료에는 영화와 철학분야 활동경험을 균형 있게 담았다. △자신의 영화작품과 시나리오 △방과후학교 고전강독 프로그램 참여 △학교 홍보동영상 촬영 △인터넷 문학카페 및 영화작품 유튜브 채널 운영 △철학적 영화비평 쓰기 활동 등을 썼다.

창의에세이에도 영화적 구성에 철학적 사고를 녹여냈다. 영화시나리오를 쓴 경험을 살려 글을 전체적으로 구성했고, 각 키워드를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게 쓰려고 노력했다. 첫 번째 에세이 주제에는 ‘실패’ ‘마음’ ‘운명’ ‘반전’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이후의 과정은 모두 실패인데, 이때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 때론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시행착오로 ‘오버랩’ 같은 영화기술을 발견한 것처럼 반전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맥락으로 글을 풀었다.

두 번째 에세이는 공상 과학적 내용의 영화시나리오 형식으로 구성했다. 전 세계에 세종대왕과 외계인의 대담이 중계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미래에 심화된 개인주의와 다문화사회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녹여냈다.

면접에서는 제출한 서류와 포트폴리오 중심의 질문이 이어졌다.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누구인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좋아하는 철학자는 누구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이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공부는 어떻게 했나 △영화를 제작하면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썼는데 어떤 일이 있었는가 같은 내용이 주를 이뤘다.

김 군은 “고교시절 영화 관련 활동을 하면서 훌륭한 영화감독이 되려면 기술적인 부분 외에도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깊은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철학 전공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그에 맞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온 부분을 어필한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