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6일/나타샤 캄푸슈 지음·박민숙 옮김/304쪽·1만2000원·은행나무
나타샤 캄푸슈. 은행나무 제공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소설 같지만 이것은 엄연한 실화다.
2006년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했던 희대의 유괴 사건. 그 피해자가 털어놓은 사건의 전말을 담았다. 열 살 때 납치됐던 소녀는 8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3096일. 소녀가 유괴된 날부터 자유를 되찾기까지 걸린 악몽 같던 시간이다.
5평(16.52m²) 남짓한 어둡고 습한 공간. ‘지하 감옥’은 한바퀴 도는 데 딱 스무 발짝이 걸릴 정도로 좁았다. “지하금고에 산 채로 매장당한 기분”이었다는 소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소녀는 일단 하룻밤을 침착하게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3096번의 밤을 이 방에 갇힌 채 보내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때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놓는다. 30대 중반의 독신 남성인 범인은 소녀가 실수를 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음식량을 줄이거나 전기를 끊거나 라디오, 비디오 등 여가용품의 사용을 제한하며 그를 학대한다.
이 에세이는 끔찍한 유괴사건의 경과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극한의 상황에 놓인 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생생하게 드러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범인은 소녀가 자라자 대범하게 함께 외출까지 했고, 소녀는 여러 번 탈출 기회를 잡았지만 심리적 공포감 때문에 스스로 주저앉아 독자를 안타깝게 만든다. 또한 범인에게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인간이기에 때론 그에게 의지했다는 점에서 사회생활이 단절된 인간이 느끼는 극심한 외로움을 읽을 수 있다.
캄푸슈의 인터뷰 내용을 일제히 1면에 실은 2006년 9월 7일자 오스트리아 신문들. 잘츠부르크=AFP 연합뉴스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는 현상)’으로 자신을 쉽게 규정하는 대중에 대한 반박도 곱씹을 만하다. “범인을 어두운 면뿐 아니라 밝은 면도 가진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 또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