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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유괴… 악몽의 3096일, 소녀… 자유를 꿈꿨다

입력 | 2011-09-17 03:00:00

◇ 3096일/나타샤 캄푸슈 지음·박민숙 옮김/304쪽·1만2000원·은행나무




나타샤 캄푸슈. 은행나무 제공

1998년 3월 2일 오스트리아에서 열 살 소녀가 등굣길에 납치됐다.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지만 소녀의 행방은 오리무중. 시간이 흘러 실종 사건이 잊혀질 무렵인 2006년 8월 23일. 앙상한 몰골의 한 여성이 한 시골집 창문을 두들기며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경찰이 출동했고, 여성은 말한다. “제가 8년 전 실종됐던 바로 그 소녀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소설 같지만 이것은 엄연한 실화다.

2006년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했던 희대의 유괴 사건. 그 피해자가 털어놓은 사건의 전말을 담았다. 열 살 때 납치됐던 소녀는 8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3096일. 소녀가 유괴된 날부터 자유를 되찾기까지 걸린 악몽 같던 시간이다.

납치는 한순간이었다. 소녀가 길가에 주차된 하얀 배달차 옆을 지나던 순간 범인은 소녀의 허리를 감싸고 번쩍 들어올려 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마치 짐을 옮기듯이,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소리를 질렀는지, 반항을 했는지도 제대로 기억 못할 정도로 소녀는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였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컴컴한 지하실 안이었다.

5평(16.52m²) 남짓한 어둡고 습한 공간. ‘지하 감옥’은 한바퀴 도는 데 딱 스무 발짝이 걸릴 정도로 좁았다. “지하금고에 산 채로 매장당한 기분”이었다는 소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소녀는 일단 하룻밤을 침착하게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3096번의 밤을 이 방에 갇힌 채 보내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때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놓는다. 30대 중반의 독신 남성인 범인은 소녀가 실수를 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음식량을 줄이거나 전기를 끊거나 라디오, 비디오 등 여가용품의 사용을 제한하며 그를 학대한다.

이 에세이는 끔찍한 유괴사건의 경과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극한의 상황에 놓인 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생생하게 드러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범인은 소녀가 자라자 대범하게 함께 외출까지 했고, 소녀는 여러 번 탈출 기회를 잡았지만 심리적 공포감 때문에 스스로 주저앉아 독자를 안타깝게 만든다. 또한 범인에게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인간이기에 때론 그에게 의지했다는 점에서 사회생활이 단절된 인간이 느끼는 극심한 외로움을 읽을 수 있다.

캄푸슈의 인터뷰 내용을 일제히 1면에 실은 2006년 9월 7일자 오스트리아 신문들. 잘츠부르크=AFP 연합뉴스

탈출 후 저자는 자유를 얻었지만 “새로운 감옥에 다시 빠져든 것 같다”고 느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대중과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희대의 유괴 사건 희생자’에 대한 의혹과 질시의 시선도 많았다는 것. “피해자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기만”이라고까지 말하는 저자는 여전히 피해자로 남아있는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는 현상)’으로 자신을 쉽게 규정하는 대중에 대한 반박도 곱씹을 만하다. “범인을 어두운 면뿐 아니라 밝은 면도 가진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 또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