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면 생각나는, 여운이 긴 배우 되고 싶어”
뮤지컬 배우 임혜영 씨는 “뮤지컬 무대에서 좀 더 실력을 갈고닦아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이 목표”라면서 무대 연기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정말 억울해요. 대부분 팔자 사나운 여자 역할만 맡아왔는데 그냥 여성다운 이미지로만 기억하시니까요.”
2006년 ‘드라큘라’의 앙상블 배우로 뮤지컬에 입문한 이후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뮤지컬 배우 임혜영(29). 그가 처음으로 공주 역할을 맡았다. 만화가 원작인 서울예술단의 창작뮤지컬 ‘바람의 나라-호동’(김진 작, 유희성 연출)의 낙랑공주 역이다.
“팔자가 기구하긴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예요, 정략결혼에 대한 거부감으로 약혼자(호동)를 미워하다가 첫눈에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은 여자니까요. 투란도트의 류도 칼리프 왕자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미스 사이공의 킴도 아들을 위해 죽음을 택하잖아요.”
2006년 데뷔 이후 거의 공백기 없이 무대를 지켜온 그는 배역 운이 좋기로 소문난 여배우다. 그 역시 이를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전작과 차별화된 배역에 도전해 왔던 자신의 노력이 매번 묻혀 버리는 것에 귀여운 푸념을 늘어놓았다.
“올해 처음으로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우리나라 나이로 여자 나이 서른이 주는 중압감, 저만의 연기 방식과 색깔을 찾아야 한다는 초조함, 모범답안이 정해져 있는 라이선스 뮤지컬에만 출연하다 보니 창작 초연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갈증으로 힘들었죠.”
그때 그를 구원해준 게 KBS 2TV 주말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이었다. 평균 연령 62세의 어르신들로 구성된 합창단의 보컬 트레이너를 맡으면서 인생의 긴 호흡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사실 뮤지컬 배우는 대중의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TV에 자주 등장하는 ‘연예인’보다 대우를 못 받는 편이다. 그의 방송 출연 배경에도 그 같은 요소가 작용했을까.
“방송 제작진이, 지휘자인 김태원 씨가 대중가수 출신이고 남자인 점을 감안해 클래식을 전공한 뮤지컬 여배우를 찾다가 성악과 출신인 제게 연락을 했어요. 마침 새 작품도 없어 쉬던 터라 새로운 도전이란 생각에 출연했을 뿐이죠.”
하지만 그도 방송의 위력을 실감하곤 잠시 ‘딴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첫 회 출연 때 오디션 보러 오신 어르신들 사연에 그냥 눈물 훔치는 것밖에 한 게 없었는데 제 이름이 인터넷 검색어 1등에 오르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어요. 하지만 살아오신 인생이 묻어나는 노래를 부르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렸죠. 청춘합창단에서 전 공주가 아니라 무수리니까요.”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