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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고급인력 유치’ 날아가는 선진국-기어가는 한국

입력 | 2011-07-27 03:00:00

“구직활동 하며 차별 경험” 65.6%…
동남아 유학생들도 한국에 등돌려




파키스탄 출신의 컴퓨터공학도 라자 씨(25)는 조만간 한국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친척들이 있는 영국으로 대학을 옮길 계획이다. 2년 전 한국에 입국할 때만 해도 박사학위를 마친 뒤 한국에 정착할 생각이었다. 라자 씨가 계획을 바꾼 것은 유학생활 중 겪었던 불쾌한 경험 때문이다. 백인 유학생과 달리 검은 피부의 그에게 한국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식당에서 그를 경계하는 종업원들의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은 기본. 학교 기숙사를 나와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 했지만 찾아가는 집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받아주지 않았다. 라자 씨는 “연봉도 높고 기회도 많은 영국에서 다시 유학생활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엔은 ‘세계인구 전망’에서 2100년 한국의 총인구는 3722만 명으로 현재보다 23%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1.22명) 때문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선진국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젊은 외국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국가 차원의 계획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뿌리 깊은 차별의식으로 능력 있는 외국인 유학생마저 한국에 등을 돌리면서 저임금 외국인 근로자만 늘어날 뿐 젊은 고급인력 유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 장벽 높은 외국 고급인력 유치


KOTRA는 6월 국내 10여 개 기업 인사담당자들과 미국과 캐나다에서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채용설명회에 참가한 150명 가운데 40%가량은 현지인이었지만 이들 가운데 채용돼 국내로 들어온 인재는 한 명도 없다. 한국인 직원보다 높은 초봉 7만∼8만 달러를 제시했지만 모두 고개를 저었다. KOTRA 측은 “외국 우수 인재들은 현지 기업보다 1.5∼2배의 연봉을 높게 주지 않으면 한국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국의 고급인력을 이민자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일하는 전문인력이 늘어야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외국 고급인력 채용은 잠시 한국을 거쳐 가는 임원급에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영주권 대상자를 확대해도 고액투자자나 박사학위 소지자 등 고급인력 가운데 영주권자는 100명도 채 안 된다.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한국의 기업문화가 생소하고 자녀교육 등 거주 여건이 외국보다 떨어지는 점 등이 한국을 기피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 컨트롤 타워 없는 한국 이민정책

문제는 한국으로의 이민 가능성이 높은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아시아계 유학생마저 한국을 등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전반에 퍼진 이들에 대한 차별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영주권자 9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구직활동을 하며 차별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전체의 65.6%, 승진 등 직장생활에서 차별을 겪었다는 응답도 44%에 이른다.

이에 따라 유럽과 북미 국가들과 비교한 국내 영주권자들의 사회통합지수는 노동시장 접근성 분야에서 29개국 중 12위를 기록하고도 차별시정 정책분야에서 최하위권(27위)을 벗어나지 못해 전체 사회통합지수는 21위에 그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춘 고급인력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한국에서 쌓은 경력을 징검다리 삼아 미국 유럽으로 옮겨가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동남아나 인도 파키스탄 출신 유학생들은 능력이 뛰어날수록 한국을 떠나려고 한다”며 “선진국 인재 유치보다 이들을 지원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외국인 인재 유치를 지원하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변변한 이민법조차 없는 실정이다. 일부 부처에서 이민 정책을 세우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민청 설립을 주장하고 있지만 검토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저성장을 막기 위해선 해외 고급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이민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세워 장기적인 이민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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