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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태풍보다 물가폭풍 더 무섭다

입력 | 2011-07-15 03:00:00

소비자물가지수 영향력 큰 전세-기름값-농산물값 들썩




 

하반기 물가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7월 소비자물가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전체 489개 품목 가운데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전세금 농산물 휘발유 등 3대 품목의 가격이 하반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금 불안은 부동산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을 줄이면서 발생했고 농산물은 잇단 기상이변으로 가격이 올랐다. 기름값은 정부가 억지로 쥐어짠 L당 100원 할인조치가 끝나면서 후폭풍을 맞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그나마 올려 잡은 4% 물가 목표도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걱정이 점차 커지고 있다.

○ 가중치 높은 것만 골라 오른다

통계청은 소비자들의 전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주요 489개 품목을 선정해 소비자물가지수를 집계한다.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반영해 품목별로 가중치를 곱해 산출한다.

가중치가 가장 높은 품목은 전세금으로 전체 물가의 6.64%를 차지한다. 이어 휴대전화 이용료(3.38%), 휘발유(3.12%), 월세(3.11%), 전기료(1.9%) 순으로 가중치가 높다. 장바구니물가와 직결된 농산물의 경우 쌀(1.4%), 배추(0.19%), 무(0.08%) 등 개별품목의 가중치는 낮지만 50개 농산물을 합친 가중치는 5.45%로 전세금 다음으로 비중이 높다.

7월 물가가 걱정되는 이유는 가중치가 높은 품목이 잇따라 오른다는 데 있다. 우선 전세금이 심상치 않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이사하려는 전통적인 학군 수요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 재건축과 우성2차 아파트 리모델링 등으로 대규모 이사 수요가 더해지면서 전세금이 들썩이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들 아파트 인근에 위치한 은마아파트(전용면적 76m²)의 경우 올해 4월 3억 원이던 전세금이 최근 3억6000만 원으로 올랐고 일부는 4억 원까지 치솟았다. 서울시 장기전세주택인 ‘시프트’도 계약해지 등으로 재공급되면서 전세금이 최초 전세금보다 최고 58%나 뛰어 올랐다.

휘발유는 L당 100원 할인이 끝난 뒤 앞다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석유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휘발유값은 L당 2019.30원으로 2008년 7월 13일 기록했던 사상 최고가(2027.79원)에 육박하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달러를 더 풀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도 기름값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버냉키 효과’가 실제로 나타날 경우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원자재 투기로 흘러들어 가고 이것이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농산물 가격도 장마로 인해 불안하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배추 도매가격은 14일 현재 1kg 기준 610원으로 지난주보다 45% 올랐고 상추(4kg)도 지난주 2만7200원에서 3만4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일조량이 부족하고 폭우로 채소 재배농가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어 농산물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장 큰 문제는 아니지만 큰비가 이어져 올해 벼농사에 영향을 줄 경우에 쌀값이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정부는 뾰족한 대책 없어

문제는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상 악화와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로 값이 오르는 터라 대책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장마가 농축수산물 물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채소류 자체의 비중은 크지 않다”며 “휘발유 등은 지금의 상승세만 놓고 상황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상반기에 폈던 부실한 물가대책이 효과를 거두기는커녕 부작용만 키웠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단일 품목으로 비중이 가장 큰 전세금은 정부가 올해 1월 ‘소형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전세자금 지원을 확대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효과를 보기 어려운 데다 변죽만 울린 것들이어서 성과가 없었다. 전세금 불안이 부동산담보대출 규제, 분양가 상한제 같은 정부 규제로 부동산경기가 침체되면서 공급이 줄어든 데서 비롯된 것인데 이에 대응할 만한 해법이 빠졌기 때문이다.

3개월만 한시적으로 L당 100원 깎아줬던 기름값은 할인기간이 끝나자마자 업체들이 앞다퉈 값을 올리는 바람에 소비자들의 원성만 샀다. 유류세를 내리는 것 외에 뾰족한 방안이 없었는데도 세수 감소를 우려한 정부가 이를 외면한 결과다. 휴대전화요금은 기본료 1000원 할인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고 전기료는 역시 묶어두려 했지만 이미 하반기에 인상이 예고된 상태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반기에도 원자재 및 농산물 가격 상승 압력 때문에 물가 오름세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며 “미시적인 대책과 함께 점진적 금리인상 등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