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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뷰티]장기이식, ‘기적’을 일궜다

입력 | 2011-05-25 03:00:00

신장이식 수술 두번 받은 환자에 췌장이식
고려대 안암병원 국내 첫 성공, 생체이식기술 발전 기폭제… 몽골 30대 공무원에 시술




박관태 고려대 안암병원 이식혈관외과팀이 뇌사자의 신장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신장이식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몽골인 티메도르 간바트 씨(33)는 올 2월 한국에서 세 번째 수술인 췌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췌장이식은 원래 장기이식 분야에서도 매우 까다로워 국내에서 5개 병원 정도만 실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의료진은 기능이 거의 망가진 간바트 씨의 췌장을 떼어내고 건강한 장기로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세 번째 장기이식을 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췌장이식에 성공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이번 성공은 국내 장기이식발전에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고난도 수술을 계기로 국내 장기이식술도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
○ 췌장이식으로 얻은 새 생명, 탈감작 요법이 일등공신

간바트 씨는 이미 중국에서 한 차례 신장이식을 받았으나 이 장기가 거부반응을 일으켜 지난해 5월 한국에서 생체신장이식 수술을 다시 받았다. 이 때문에 당뇨병 증세를 보이던 그에게 다른 장기를 새로 이식한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매우 큰 난관이었다.

장기이식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탈감작 요법이었다.

간바트 씨의 췌장이식을 집도한 박관태 고려대 안암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감작(感作)’이란 이미 몸 안에 항체가 만들어져 이식장기에 거부 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은 상태를 말한다”면서 “그대로 장기이식을 할 경우 이미 형성된 항체가 이식된 장기를 공격해 급성 거부 반응을 일으킬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에 탈감작 요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결국 10개월 동안 6번의 탈감작 요법을 실시해 간바트 씨 몸 안의 항체가 수그러든 이후 췌장 이식 수술에 들어가기로 했다. 감작 외에도 췌장 이식수술을 방해하는 요인은 또 있다. 장기를 이식할 때 보통 양쪽 옆구리 부분을 통해 이식하는데 간바트 씨의 경우 이미 두 번의 이식으로 왼쪽과 오른쪽 옆구리에 새로운 혈관이 자리 잡고 있던 상태였다. 췌장을 이식할 경우 신장이식이 이루어진 부위의 같은 혈관에 또 다른 장기를 이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미세수술의 놀라운 발달과 의료진의 노력으로 이런 난관을 뛰어넘었다.

간바트 씨는 “몽골에서 보건복지 분야 공무원으로 일하는 만큼 몽골로 돌아가 한국의 뛰어난 장기이식 수준을 널리 알리고 싶다”면서 “생사를 오가는 나를 살려준 한국 의료기술과 의료진에게 감사한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 내·외과 전 영역 장기이식 협력도 큰 관건

간바트 씨(왼쪽에서 두번째)가 박관태 고려대 안암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왼쪽)와 함께 수술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장기이식은 수술 중의 수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가장 뛰어난 의술이 필요하다. 국내 대형 의료기관은 소장, 폐, 심장, 간, 신장 등 5대 장기 이식에서 성공률이 높고 특히 생체 간이식의 경우에는 미국을 비롯한 유수의 국가에서 연수를 받으러 올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장기이식 성공 경험이 많은 병원이라면 다른 수술 역시 뛰어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수술 잘하는 병원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하기도 한다.

장기이식은 수술을 주도하는 외과와 환자를 돌보는 내과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고려대 안암병원 등 국내 대형 병원들은 현재 내·외과 분야 전 영역의 의료진이 장기이식을 위해 협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체제는 특화된 수술팀을 구성하고 전문 코디네이터를 강화한 팀워크를 통해 이식장기의 다변화와 이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2008년 2월 뇌사판정대상자관리 전문기관(HOPO)으로 선정된 고려대 안암병원은 장기이식 수술이 본격화한 2009년 3월 이후 최근 2년간 췌장 심장 간 신장 등에서 140여 건의 장기이식을 진행했다. 국내에서 실시하는 해외환자 장기이식의 절반 이상이 이 병원에서 이뤄진다. 특히 한국형인공심장 H-VAD의 연구개발 및 상용화에 힘쓰고 있는 고려대 한국인공장기센터 및 심혈관센터와 연계해 심장이식 분야에서도 의술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 턱없이 부족한 장기기증, 평균 1년 이상 대기

대형병원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장기이식 분야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선 장기이식 대기자가 많고 장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의 2011년 3월 장기이식 현황자료에 따르면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이식대기자는 1만8988명. 하지만 2010년 1년 동안 골수와 각막을 포함해 장기를 이식받은 건수는 3000여 건에 불과했다.

이 중 골수와 각막을 제외한 신장, 간, 췌장, 심장 등 고형 장기의 이식은 신장 1264건, 간장 1061건 등 총 2458건. 이 중 뇌사자 기증이 868건이었으며,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기증받은 건수는 1749건이었다. 장기기증자는 매년 늘고는 있다. 뇌사 장기기증 및 장기이식 현황에 따르면 기증자는 2004년 86명, 2007년 148명, 2009년 261명 등 꾸준한 증가 추세다. 하지만 2009년 신장을 이식받은 사람의 대기 기간이 평균 780일, 간장의 경우 평균 112일, 췌장의 경우 825일이었다.

김동식 고려대 안암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는 “뇌사자 장기기증 비율을 보면 미국, 프랑스 등이 인구 100만 명당 평균 25명이지만 한국은 5명도 되지 않는다”면서 “장기기증자가 늘면 안타깝게 생명을 잃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