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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윤상호]자살한 훈련병 어머니의 애절한 전화를 받고…

입력 | 2011-05-18 03:00:00


“아들과 같은 소대 훈련병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는 동아일보의 보도를 보면서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15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중년 여성의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가늘게 떨렸다. 올해 2월 중이염과 이명(耳鳴) 증세로 민간병원 진료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는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정모 훈련병(21)의 어머니였다. 본보는 14일자 A1면에 지난달 야간 행군 뒤 급성호흡곤란 증세로 사망한 노모 훈련병(23)이 정 훈련병과 같은 소대였다고 보도했다.

정 훈련병의 어머니는 “내 아들도 초기에 제대로 진료를 받았더라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더 이상 나 같은 부모가 없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전화를 끊은 뒤 20여 년 전 훈련병 시절이 떠올랐다. 육군 모 사단 훈련소에 기자를 비롯한 1000여 명의 젊은이가 군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때였다.

다소 쌀쌀한 초봄 날씨에 난생처음 군복과 군화 차림으로 연일 고된 훈련을 받다 보니 적지 않은 훈련병이 목감기와 몸살, 근육통에 시달렸다. 일부 증세가 심한 훈련병은 밤새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기도 했지만 사단 의무대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버텨야 했다.

당시에도 훈련병이 민간병원을 이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큰 부상이나 뚜렷한 병세가 없으면 군 병원 후송도 힘들었다. 섣불리 후송 얘길 꺼냈다가는 ‘군기가 빠졌다’ ‘꾀병 부린다’는 면박을 받거나 이른바 ‘고문관’으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우려했다. ‘군 병원에 가면 병을 더 키운다더라’ ‘누가 군 병원에서 수술한 뒤 불구가 됐다더라’는 풍문에 불신도 컸다.

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지만 군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군 의료시설을 믿지 못해 휴가를 이용해 민간병원을 찾는 현역병 수도 줄지 않고 있다.

최근 군내 의료사고가 잇따르면서 국회가 팔을 걷어붙였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국방의학원 설립을 재추진하는 등 군 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군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도 더 이상 예산 타령이나 다른 부처 탓만 하지 말고 군 의료체계 대수술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낙후된 군 의료체계 때문에 피해를 보는 장병과 ‘내 아들 군대 보내기 불안하다’는 부모들의 근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싸워 이기는 선진강군’ 건설은 요원하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