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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李대통령 “총수문화 바뀌어야 한다” 발언 속내는

입력 | 2011-05-18 03:00:00

‘레임덕 차단’ 마음 급한 MB, 다시 재벌 정조준?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중소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재계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자, 재계가 ‘레임덕 방지를 위한 기업 때리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대기업 문화가, 총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에 대해 심상치 않은 ‘선전포고’로 들린다는 반응이 나왔다. 특히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실적 위주로 하는데, 실적 위주는 남의 희생을 유발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발언은 재계 총수에 대한 대통령의 불신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벌 총수를 비판했다가, 대기업 공로를 치하했다가, 또 ‘제3의 인물’을 앞세워 대기업을 압박하는 듯한 이 대통령의 갈지(之)자 행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당선자 신분이던 2007년 12월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직접 방문해 ‘비즈니스 프렌들리’ 대통령이라 불렸다. 집권 4년 동안 재계를 보는 그의 시각은 어떻게 바뀐 것일까.

재계는 이 대통령이 급변한 시점을 지난해 8·15 경축사 전후로 보고 있다. 집권 후반기를 끌어갈 카드로 ‘공정사회’를 꺼내든 뒤 대기업에 각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삼성 SK 한화 롯데 오리온 등 오너 대기업 계열사에 강도 높은 세무조사와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정부가 재벌 총수들을 겨냥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나 경제대책회의 등에서 수시로 총수 책임론을 언급한 것도 이런 관측에 설득력을 더했다.

이 대통령은 올 1월 전경련을 직접 찾아가 만난 30대 기업 총수들에게 ‘위대한 기업에서 사랑받는 기업으로’라는 책을 권했다. 상생경영의 대가로 불리는 라젠드라 시소디어의 책을 통해 재벌 총수들이 동반성장에 앞장서야 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시한 것이었다. 지난해 9월에는 12개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총수들이) 현장에 가볼 기회가 별로 없을 것이지만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인간적 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각종 경영지표 격차가 커지면서 대기업이 과실(果實)을 독점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자 총수들에 대해 이 대통령이 섭섭함을 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극화 문제 심화도 총수들이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긴다는 분석이다.

결정적으로 올 3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정부 경제정책) 낙제점’ 발언에 이 대통령의 심기가 크게 불편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대표 격인 이 회장이 정부의 경제성적을 폄하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재벌들이 정부의 환율, 수출지원 정책 덕분에 호황을 누리면서도 정부의 시책을 따르지 않는 행태를 더는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이 때문에 ‘왕의 남자’로 불리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연기금 주주권 행사’ 발언을 통해 대기업을 정면 겨냥한 것도 이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해석됐다. 더욱이 곽 위원장의 발언이 이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는 이를 대통령의 재벌 군기잡기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대통령의 반(反)총수 발언 수위가 높아지는 것과 관련해 앞으로는 재벌에 대한 압박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통상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면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공무원과 기업을 강하게 다그치는 관행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4·27 재·보선에서 처절한 민심 이반을 겪은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벼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 대비해 떠나간 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방편으로 반총수, 반재벌 기조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