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 ‘보살피는 손길’ 인기… 작년 취업자 절반 차지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30만 개에 이른다. 경기 회복으로 전체 실업률이 낮아지고 있지만 청년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해 ‘고용의 봄’이 아직 멀었다는 평가가 많다. 동아일보는 ‘일자리 블루오션을 찾아라’라는 창간기획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서비스업 활성화와 고령층 재취업 등을 통한 국내외 일자리 만들기 현장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차움. 호텔과 병원, 고급헬스센터를 합쳐놓은 듯한 이곳은 차병원이 지난해 11월 ‘미래형 의료기관’을 내걸고 문을 연 원스톱 건강관리서비스회사. 중장년층 고객과 외국인들이 이곳에서 의료검진을 받은 뒤 운동요법, 스파 및 피부관리, 항노화 클리닉, 음식치료 같은 일대일 맞춤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이곳이 개장하면서 새롭게 일자리를 찾은 사람은 200명이나 된다. 직종도 뇌기능을 체크하는 뉴로피드백(Neuro feedback) 기사와 차(茶)를 활용한 한방요법을 제공하는 티세러피(Tea Therapy) 매니저 같은 생소한 것부터 VIP 안내서비스를 담당하는 컨시어즈, 운동치료사, 해외마케터까지 78개에 이른다.
건강관리회사 신설로 200명 취업 개인 건강체크룸 앞에서 맡은 업무별로 각기 다른 유니폼을 입은 차움 직원들이 고객을 맞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지난해 11월 ‘미래형 의료기관’을 모토로 문을 연 이곳은 78개 직종에 200명을 신규 채용해 고용 창출에 한몫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의료, 보건복지는 일자리의 블루오션
경남 김해시에서 실버캐슬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대진 원장은 최근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영양사 등 여러 직종의 근무인력을 평균 15%가량 늘렸다. 고령화사회의 급속한 진행으로 요양병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데다 병원 인력 규모와 질에 따라 정부의 인센티브가 제공되면서 이 분야의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요양병원은 2.8배 증가한 데 비해 상근인력은 4135명에서 3만3965명으로 7.2배 증가했다. 김 원장은 “2018년에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보여 의료 분야의 일자리는 계속 늘 것”이라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취업도 급증세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새로 생겨난 요양보호사는 지난해 말 23만7709명으로 2년여 만에 3배로 증가했다. 요양시설인 실버케어스의 소장을 맡고 있는 김영애 서울여자간호대 교수는 “법적으로 노인 2.5명당 1명씩 요양보호사를 두도록 의무화되어 있고 연령이나 학력 제한이 없기 때문에 중장년층의 취업희망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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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 속도 따라가지 못하는 의료제도
하지만 최 씨의 희망대로 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일자리는 정부가 나랏돈을 투입하거나 기업이 투자를 해야 늘어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지난해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서비스업이 1% 성장할 때 고용은 0.66% 증가하지만 제조업은 1% 성장 때 고용이 0.1% 감소한다. 기댈 곳이 서비스업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서비스업인 의료산업은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외부 자금 조달의 길이 막혀 있다. 현행 의료법상 국내의 의료법인은 모두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일반 영리기업처럼 주주를 모으거나 채권을 발행해 투자금을 모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투자를 할 때마다 기형적인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차움도 한 건물 안에서 차움의원이 검진을 맡고 각종 건강관리서비스는 차바이오앤디오스텍이라는 바이오 계열사가 담당하는 ‘한 지붕 두 가족’의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른바 네트워크형 병원 대부분이 유사한 편법을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일자리창출팀장은 “이들은 법 테두리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 개정안과 제정안이 여러 개 국회에 올라가 있지만 통과가 되지 않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제 정부는 논란이 되고 있는 영리병원 도입에 앞서 의료채권법, 병원에 숙박업과 병원경영지원회사(MSO)를 부대사업으로 인정하는 법안, 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법원을 허용하는 법안 등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몇 년째 잠자고 있다. 정부는 최근 의료관광사업과 메디컬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건강관리서비스법과 뷰티산업진흥법 제정법안, 유비쿼터스헬스(U-헬스) 진작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의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으나 역시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야당에서 의료서비스의 ‘부익부 빈익빈’을 불러온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의료허브 경쟁에서 뒤처지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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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역시 증시에 상장된 파크웨이병원그룹이 막대한 자금동원력을 바탕으로 3개의 대형병원을 운영하며 의료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2년 100만 명의 해외환자를 유치해 1만3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병원들도 지난해 5월 의료법 개정으로 해외환자 알선과 유치가 가능해지자 중동과 러시아 뉴질랜드 등을 찾아가 유치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경쟁국에 비해 아직 인지도가 낮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 의료관광객은 6만201명으로 경쟁국에 비해 턱없이 적다.
진수남 한국관광공사 의료관광사업단장은 “의료관광산업이 성숙되지 않아 전문 인력을 배출해도 현재로선 수요가 많지 않다”며 “하지만 취업유발계수가 10억 원당 52명으로 상당히 높은 것으로 추산돼 향후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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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의학에 대한 수요가 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가 높아지면서 직종이 점점 세분되고 다양해질 것이라는 점도 일자리 창출에서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미술을 통해 심리치료를 하는 미술치료사를 비롯해 음악심리치료사, 놀이치료사, 노인심리치료사 등의 직종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