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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인천서 1, 2대 의원 지낸 죽산 잡혀갈줄 알면서도 망명 안해”

입력 | 2011-03-22 03:00:00

죽산 수행비서 이재윤씨… 아벨서점서 사랑방 강좌




죽산 조봉암 선생의 수행비서 이재윤 씨 가 18일 인천 동구 배다리 아벨서점에서 ‘죽산 조봉암과 인천에서의 정치활동’이 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죽산 선생은 하루 3, 4곳에서 강연을 한 적이 많았는데, 할 때마다 말과 내용이 다 달랐습니다. 책을 열심히 읽으며 공부도 많이 하셨지요. 지금 생각해도 참 훌륭하신 분입니다.”

간첩죄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죽산 조봉암 선생(1898∼1959)의 생전 모습을 생생히 보는 듯한 사랑방 좌담회가 18일 죽산의 정치무대였던 인천 동구 금곡동 배다리에서 열렸다.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난 죽산은 인천을을 지역구로 1,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지근거리에서 죽산을 보필하다가 육군 특무부대에 검거됐던 죽산의 수행비서 이재윤 씨(79)가 이날 오후 배다리 아벨서점의 사랑방 강좌에서 ‘죽산 조봉암과 인천에서의 정치활동’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최근 대법원 재심 선고공판에서 죽산 선생의 간첩죄 혐의에 무죄 판결이 내려진 이후 죽산을 기리는 토론회가 인천에서 처음 열린 것. 이날 죽산을 연구해온 각계 전문가 등 30여 명이 참석해 심도 있는 질문을 하는 바람에 죽산의 숨겨진 개인사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이 씨는 “1,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죽산 선생의 지역구가 인천을이었는데, 선거본부 사무실이 이곳(아벨서점)과 가까운 옛 양조장 바로 옆에 있었다”며 “목조 건물이던 사무실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처마가 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죽산 선생이 초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자마자 (경인전철) 동인천역 앞 좌측 뒷골목에 젊은 의원들 중심의 ‘의지(意志) 구락부’를 만들었다”며 “국회에서 발언을 제일 많이 했고 그의 기사가 신문에도 자주 실렸다”고 소개했다.

이 씨는 죽산과 자신의 인연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친형이 죽산 선생과 아주 가깝게 지냈어요. 그래서 광복 이후 10대 때부터 죽산 선생의 선거 벽보를 붙이고 다닐 정도로 따랐고, 군에 갔다 온 뒤 수행비서가 됐습니다.”

죽산은 농림부 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지낼 때도 별다른 수행원 없이 믿을 만한 사람 1명만 대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 씨는 지프를 운전하면서 죽산을 4, 5년간 수행했다는 것.

그는 죽산 선생이 후보로 출마했던 3대 대통령 선거 이후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또렷이 기억했다. “대통령 후보 정견 발표를 주로 오후 7∼9시에 했어요. 마지막 정견 발표를 하고 난 뒤 가족도 모르는 곳에 피신해 있었지요. 선거 이후엔 ‘죽산이 투표에서 이겼는데 개표에서 졌다’는 소리가 파다했습니다.”

죽산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자 그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더욱 극심해졌다는 것. 이 씨는 “주변에서 해외 망명을 적극 권유했지만 죽산 선생은 자신이 잡혀갈 것을 알면서도 ‘혼자 살려고 동지를 버릴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토론회가 열린 헌책방거리 내 아벨서점은 죽산이 1954년 3월 스위스 제네바회담을 앞두고 펴낸 ‘우리의 당면 과업’이란 책을 전시하고 있다. 이 서점 주인 곽현숙 씨는 국한문 혼용체인 이 책 원본을 간직해오다 대법원 판결 이후 일반에 공개했다.

죽산 사무실이 있던 배다리 일대는 인천시 유형문화재 3개를 포함한 근대 유적지가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1892년 국내 최초 사립학교로 설립된 영화초등학교, 1897년 한국 최초 철도인 경인철도 기공식 장소 우각현(쇠뿔고개), 1905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여선교사 기숙사, 인천의 3·1운동 시발지 등이 있다. 이날 토론회는 이 같은 근대유적지를 보존하려는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위원회’가 주최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