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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구]정치후원금의 원죄 세액공제

입력 | 2011-03-16 03:00:00


이진구 사회부 차장

‘머피의 법칙’은 흔히 재수가 없을 때 사용하는 말이지만 원래 의미는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고 만다’는 뜻이다. 나쁜 씨는 결국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나 할까.

최근 여론의 질타를 받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정치자금법 개정안 처리가 꼭 그렇다. 4일 행안위가 기습 처리한 개정안은 국회의원이 눈치 보지 않고 특정 이익단체의 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터줬다.

개정안의 상임위 기습 처리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끓는 물처럼 폭발했다. 더욱이 이 시기는 검찰의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입법로비 수사로 여야 의원 6명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들 의원에 대한 처벌 근거는 사라진다. 당연히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이 일었다.

행안위의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법안 내용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문제가 없는 곳은 없었다. 소위원회 위원도 당일에야 알 정도로 기습작전 같았던 처리 과정, 여론의 질타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본회의 처리 방침, “이 사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며 이상한 묵비권을 행사한 의원….

물론 정치자금 기부 금지 범위를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에서 ‘법인 또는 단체의 자금’으로 한정함으로써 이익단체가 ‘쪼개기 후원’ 등 각종 편법을 동원해 금품 로비를 벌일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개정안 내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진짜 ‘나쁜 씨’는 2004년 도입된 소액후원금제도에 ‘전액세액공제’와 ‘소득공제’라는 ‘독’을 심으면서 이미 뿌려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소액후원금제도는 불법 정치자금을 차단하고 개개인의 자발적 정치 후원을 권장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기부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10만 원을 기부하면 세액공제 및 소득공제를 통해 11만 원을 돌려주는 편법을 사용했다. 형식은 ‘기부’지만 사실상 국민 이름을 빌려 나랏돈으로 의원 후원금을 준 셈이다. 그것도 원금만 준 것이 아니라 10%의 ‘재테크’ 효과까지 유발했다. 당시 의원들은 후원금을 모금하면서 팸플릿이나 플래카드에 당당하게 ‘10만 원 내면 11만 원을 돌려받습니다’라고 선전했다. 2006년 전액세액공제를 10만 원까지로 변경했지만 근본은 달라지지 않았다.

‘기부’라는 이름으로 의원들이 이용한 이 제도를 다른 집단이 가만히 놔둘 리는 만무하다. 이 제도는 입법로비 등이 필요한 이익단체에는 참으로 편리한 수단이 됐다. 금전적 손해도 없이 소속 단체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다면 누가 마다할까.

국민의 질타가 거세지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서 개정안 수정, 19대 국회부터 적용 등 온갖 방안이 나왔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소액후원금제도에서 ‘전액세액공제’라는 ‘나쁜 씨’가 제거되지 않는 한 청목회 같은 유사 사건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이 제도에는 본래의 ‘기부정신’이 실종되고 오직 ‘수금’이라는 잿밥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부는 ‘희생과 대가 없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낸 돈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어떻게 기부가 될 수 있을까. 물이 끓어 넘치는 것을 멈추는 데는 불타는 장작을 들어내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전액세액공제’라는 ‘장작’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이번처럼 ‘나쁜 씨’의 결과는 또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진짜 ‘머피의 법칙’이다.

이진구 사회부 차장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