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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내전 위기]“카다피軍 목표는 시위해산이 아니라 살육이었다”

입력 | 2011-02-23 03:00:00


《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이 계속되면서 리비아 민주화 시위는 최악의 유혈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카다피 국가원수는 전투기와 헬기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공격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수도 트리폴리를 가까스로 지켜내고 있지만 군 및 정부 인사뿐만 아니라 이웃 아랍국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 》

총기 등으로 무장한 반정부 시위대가 리비아 동부의 넓은 지역을 손에 넣으며 세력을 확대하고 있어 카다피 원수의 장악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카다피 원수가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나 진 엘아비딘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과는 달리 ‘보다 많은 피를 보겠다’고 결심했다”고 보도했다.

○ 대학살의 현장 트리폴리


카다피 국가원수에게 충성하는 특수부대와 친정부 용병이 21일 밤을 기해 본격적인 폭력진압을 시작하면서 트리폴리는 대학살의 현장으로 변했다. 한때 반정부 시위대가 점거했던 녹색광장은 전투기와 헬기까지 동원한 이날 밤 작전 이후 수백 명의 친정부 시위대가 다시 차지했다.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한 용병들이 정부청사와 경찰서를 공격하던 반정부 시위대를 공격하면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정부군 소속 전투기와 헬기는 상공에서 시내 곳곳에 소형 폭탄을 투하하고 총탄을 퍼부으며 공격했다. 건물 옥상에는 저격수가 배치돼 시위대를 한 명씩 조준 사격해 쓰러뜨렸다. 또 특수부대원과 용병들은 트럭에 올라탄 채로 달아나는 시위대를 추격해 사살했다. CNN방송은 용병들이 거리에서 움직이는 모든 사람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어 시신을 수습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친정부 용병들이 시위와 상관없는 주택 현관 앞에까지 총을 발사해 공포감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시민은 “용병들이 반정부 시위대를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는데도 경찰은 그냥 지켜보고만 있다”고 말했다. 주민 왈리드 씨는 “오늘 정부군의 작전 목적은 시위 해산이 아니라 반정부 시위대 사살인 것처럼 보였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카다피 국가원수의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은 21일에 이어 22일에도 국영TV에 잠시 출연해 “전투기의 목표물은 시내가 아니라 시외의 탄약보급창이었다”고 주장했다. CNN은 22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800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반전쟁범죄국제연대는 519명이 숨지고 3980명이 부상했으며 실종자는 150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 이탈 가속화

해외 주재 외교관을 중심으로 카다피 정권에 등을 돌리는 고위직 인사들의 움직임이 가속되고 있다. 이브라힘 다바시 주유엔 리비아 부대사는 21일 동료 외교관 10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카다피 정권의 유혈진압에 반대한다며 카다피 국가원수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는 “카다피 정권이 국민을 상대로 한 집단학살을 시작했다”며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한다.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카다피의 반인륜적 범죄를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무함마드 샬감 대사는 이날 회견에 불참했으나 본국 정부에 시위대 탄압을 중단하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리 아드잘리 주미 리비아대사도 “시위대에 발포하는 정부를 위해 더는 일하지 않겠다”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A H 엘리맘 주방글라데시 리비아대사는 군대가 이번 시위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을 살해했다며 대사직을 내놓았다.

군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공군 대령 2명은 반정부 시위대의 거점인 벵가지를 폭격하라는 지시를 받고 출격했으나 기수를 돌려 몰타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 국제사회 분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세계가 리비아 사태의 전개를 주시하고 있다”며 “용납할 수 없는 유혈사태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유럽연합(EU)은 외교장관회의에서 폭력을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앞으로 리비아는 카다피 없는 리비아가 될 것”이라고 말해 카다피 정권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57개국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 이슬람조직인 이슬람회의기구(OIC)도 이날 “리비아 국민을 상대로 한 과도한 공권력 동원에 강한 비난을 표명한다”며 “억압을 중단하고 시위대와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이란 외교부도 “리비아 국민에 대한 극도의 폭력은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 탈(脫)리비아 행렬


미국 정부는 필수 인력을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리비아를 떠나도록 했다. 이탈리아도 특별 항공편을 통해 리비아에서 빠져나오기를 원하는 자국민을 지원할 계획이다.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석유회사를 비롯한 외국 기업들도 직원을 철수시키고 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