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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자연과 인간 분리됐다는 생각이 지구온난화 위기 대응 어렵게 해”

입력 | 2010-11-29 03:00:00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받은 佛라투르 교수

사진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사물이나 자연 같은 비인간적인 객체에도 정치적 지위나 주체성을 부여해 인간과 통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을 정립한 브뤼노 라투르 파리정치학교 교수(63·사진)가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돼 최근 방한했다.

라투르 교수는 26, 27일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트에서 열린 간담회와 수상기념 강연회에서 자신의 학문적 성취에 기반을 둔 신념을 피력했다. 센터 측은 고 백남준이 예술과 철학을 결합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처럼 라투르 교수가 사물과 인간을 잇는 이론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새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을 인정해 수상자로 선정했다.

행위자 연결망 이론은 1980년대 초반 그가 동료학자인 프랑스의 미셸 칼롱, 영국의 존 로와 함께 내놓은 이론. 어떤 행위를 하는 행위자는 다른 사람과 사회는 물론이고 자연, 사물과 두루 연결돼 있으므로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또 인간과 사물 사이의 연결망이 조화롭게 기능해야 사회와 환경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라투르 교수는 인류가 현재 ‘자연과 인간을 구분하지 못했던 전근대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 적이 없음에도 인간과 비인간(사물 혹은 자연)을 구분하는 분절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거나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치와 연관된 행위자 연결망만 보더라도 예전에는 어민과 참치만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지중해의 참치를 보호하겠다는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일본, 지중해의 국가들 등 수많은 요소와 연결돼 있다. 지정학적 연결망이 복잡하기 때문에 사회와 자연의 분리란 더는 통용될 수 없다.”

그는 인류가 인간과 자연을 엄격히 구분하는 양분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하이브리드’(지구온난화, 신종 박테리아, 유전자 변형 식품 등)를 양산함으로써 인간 사회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최대의 위협은 ‘지구온난화’라고 말했다. 그는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방편으로 영국 대기과학자이자 의학자인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개념을 높이 평가한다. ‘가이아’는 지구 자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 개념이다.

그는 “가이아는 인류의 존망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 비정한 주체여서 인류를 각성시킨다. 인류가 당면한 위험을 통합적인 개념으로 인지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스로가 생명체인 지구라는 통합적이고 논쟁적인 개념이 제시됨으로써 인류는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자세로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그는 프랑스의 소수정예교육기관(그랑제콜)인 파리정치학교의 학제 개편에 참여하는 등 통합적 사고를 실행하고 있다. 최근 ‘정치 예술’이라는 과목을 만들어 수업을 진행 중이며 지구온난화에 관한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그는 3박 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28일 귀국했다.

국내에는 그의 저서 중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2009년·갈무리)가 번역돼 있다.

용인=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