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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벨맹노엘“불현듯 열정 뿜는 한국문학에 매혹”

입력 | 2010-11-24 03:00:00


《“(한국문학에 관한) 내 글들은 매번의 ‘쿠 드 쾨르’입니다.” 장 벨맹노엘 씨(79)는 ‘충격과 교감’(문학과지성사) 출간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쿠 드 쾨르(coup de coeur)’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불현듯 솟아오르는 열정 혹은 영감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표현이다. 저자의 한국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말이다.》

장 벨맹노엘 씨는 “문학은 누군가의 얘기를 따라 적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앞서서 열어 보이는 것”이라면서 “한국문학은 그 새로움을 던져준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문학과지성사

벨맹노엘 씨는 파리8대학 문학교수를 지낸 프랑스 비평가다. 40여 년 동안 문학 연구에 매진해온 그는 최근 10여 년 전부터 한국문학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면서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자신이 읽은 한국문학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글을 썼고, 그 평론들을 ‘충격과 교감’으로 묶었다. 외국의 비평가가 한국문학에 대한 평론을 문예지에 싣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단행본 평론집으로 펴낸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올해 대산문학상 번역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벨맹노엘 씨를 23일 만났다.

“자아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 문학이 탐색해온 이 주제에 대해 오직 한국문학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이 있습니다. 거기에 매혹됐지요.”

그는 한국문학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가령 1980년대의 시대적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담긴 이인성 씨의 연작 ‘낯선 시간 속으로’의 경우 “세계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시적 요소가 한 작품에서 공존하는, 즉 이성적인 접근과 무의식적 사유가 함께하는 특별한 사례”라는 것이다.

그러나 벨맹노엘 씨가 보다 주목하는 부분은 우리 작가들의 ‘자율적인 글쓰기’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분석틀로 삼아 작품을 연구해온 벨맹노엘 씨는 “프랑스 작가들의 경우 자신의 작품이 평론가들에게 어떻게 읽힐 것인지의 문제를 미리 생각하고 쉽게 해석되지 않도록 방어 기제를 쳐 놓는다”면서 “그러나 한국 작가들은 비평가의 분석에 대해 덜 방어적인 것 같고 그만큼 글쓰기가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김경욱 씨의 단편 ‘위험한 독서’에 나오는 성애 장면에 대해선 이렇게 평가했다. “프랑스 작가들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스스로 2차 해석을 가하면서 쓸 텐데, 이런 점에서 한국 작품은 구별되어 보인다. 이런 글쓰기는 오히려 비평가들이 기존의 분석틀에 갇히지 않고 새롭고도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충격과 교감’에는 ‘위험한 독서’와 ‘도마뱀’, 최인훈 씨의 ‘광장’, 이인성 씨의 ‘낯선 시간 속으로’ 등 7편의 한국문학 텍스트에 대한 비평이 실렸다.

올 초 프랑스 문예지 ‘유럽’의 ‘한국작가 특집’ 기획에 참가하면서 벨맹노엘 씨는 김연수 씨의 ‘부넝쒀’, 정이현 씨의 ‘트렁크’, 편혜영 씨의 ‘아오이 가든’, 한유주 씨의 ‘막’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접했다고 했다. 그는 “발화주체로서의 여성의 대담함을 다루는 정이현 씨, 극단적인 방식으로 세계의 위기를 그리는 편혜영 씨 등 여성 작가들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 그 작품들은 ‘한국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낯설고도 다른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위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해 그는 “문학에 대한 업적도 중요하겠지만 정치적 요소도 많이 작용하는 상”이라면서 “한국이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널리 알려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꾸준히, 잘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하면 한국문학 그 자체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