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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PL상품’ 매달 검증하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동행취재

입력 | 2010-11-01 03:00:00

자체상표로 개발 ‘간장맛 치킨’ 맛본 후 “맛있네요, 그런데 식어도 이 맛 납니까”




《“맛있네요. 그런데 식어도 이 맛이 납니까. 고객이 우리 매장에서 산 치킨을 뜨거울 때 먹기는 힘들 텐데요…. 제대로 검증하려면 식었을 때 맛을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이마트 본사. 자체브랜드(PL)상품으로 개발한 간장맛 양념 치킨을 맛본 뒤 ‘칭찬’하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살짝 말을 돌렸다. 방금 요리해 따끈한 치킨의 상태가 오히려 흠이었다. 정 부회장은 “어떤 음식이든 갓 만들면 맛있는 것 아니냐”며 “실제로 고객이 맛보는 것과 같은 상태로 점검하지 않으면 확실하게 검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이마트 본사에서는 ‘이마트 PL 컨벤션’이 열렸다. 이마트 임원들이 이 회사가 곧 출시할 PL상품에 대해 해당 상품기획자(MD)의 설명을 직접 듣고 상품성을 점검하는 자리다. 컨벤션 회장 옆에는 즉석 식품 조리를 위한 주방도 마련됐다. 올해 1월부터 매월 한 차례씩 열리는 행사다. 정 부회장과 최병렬 이마트 대표를 비롯한 주요 임원이 참석한다.》

○고객 눈높이에서 검증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최병렬 이마트 대표(정 부회장 왼쪽) 등 이마트 주요 임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열린 ‘이마트 PL 컨벤션’에서 상품 기획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정 부회장은 자체브랜드(PL)상품에 대해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고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제공 신세계

기자는 정 부회장과 동행하며 컨벤션을 돌아봤다. 간장맛 양념 치킨은 정 부회장이 이날 처음 점검한 상품이다. 처음부터 ‘깐깐한’ 지적이 나온 셈이다. 정 부회장은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약속 시간보다 2시간쯤 뒤에 와야 제대로 볼 수 있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장내에 잠시 웃음이 번졌지만 곧바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컨벤션에선 110여 개 품목이 소개됐다. 중소 협력업체와 이마트가 함께 기획한 제품이 70% 이상이었다. 기존 제품 가운데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포장을 바꿔 차별화한 제품도 같이 전시됐다.

정 부회장은 2시간 동안 자장면이나 어묵 같은 즉석 조리 식품을 일일이 맛보고, 생활용품을 직접 만져보며 경쟁사 제품이나 이전 제품과의 차이점을 꼼꼼히 따져 물었다. 기자에게 음식을 건네며 의견을 묻기도 했다. 그는 “컨벤션에 나올 정도면 자체적으로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통과한 상품”이라며 “대부분 품질이 괜찮지만 간혹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유기농 음용 식초’를 맛본 정 부회장은 그 자리에서 “맛이 없다”며 담당자에게 제품 보완을 지시했다. 정 부회장은 “유기농 제품이라고 맛이 없어도 된다는 생각은 버리라”며 “몸에 좋아도 맛이 없으면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가량 이마트 품질혁신팀의 ‘검증’을 거친 제품이지만 이렇게 최고경영자(CEO)의 까다로운 눈썰미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제조 PL상품 확대”

대기업과 함께 기획한 제품들은 가격 경쟁력에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2개들이 포장을 새로 만들어 낱개로 2개 살 때 가격보다 100원 싸게 내놓기로 했다. 롯데제과의 ‘꼬깔콘’은 경쟁업체에서 판매하는 제품보다 15% 증량해 선보일 예정이다. 최성재 이마트 가공식품담당 상무는 “제조사는 가격을 낮추는 대신 진열 공간을 늘려 판매와 브랜드 홍보를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동용 교구인 ‘물부치’ 앞에 발길이 멈췄다. 옥수수전분과 식용색소로 만든 물부치는 물로 붙여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친환경 블록이다. 아이들이 먹어도 안전하다는 담당자의 설명에 정 부회장은 “진짜?”라고 반문하며 관심을 보였다. 상품 기획자인 김태윤 대리는 “제조 중소업체가 2005년부터 관련 특허 기술을 보유했지만 판로가 없었다”며 “이마트가 6개월 동안 함께 기획해 상품화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컨벤션 이후 기자에게 “중소기업은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과 정보, 판로가 부족하다”며 “이들에게 충분한 판로를 제공하는 것이 상생과 동반성장 아니냐”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이날 행사 참석에 앞서 문용식 나우콤 대표와 이마트 피자와 관련해 ‘트위터 설전’을 벌였다.

▶지난달 30일자 A14면 참조
문용식 나우콤 대표-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한밤 트위터 설전’


그는 이마트 피자를 포함해 최근 이마트의 PL상품 확대 추세에 대해서 “중소기업이 만드는 PL상품을 늘려나갈 생각이지만 무조건 확장하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정 부회장은 “PL상품을 늘리는 것은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경쟁 업체와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 방향으로 가지 않는 PL상품 개발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 PL상품 ::

자체브랜드(Private Label) 상품. 유통업체에 따라 PB상품으로 부르기도 한다. 유통업체가 제조회사의 브랜드 대신 자사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제품. 유통업체와 협력회사가 함께 기획해 개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