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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포항문인 500여명, 재생 선생 추모

입력 | 2010-10-05 03:00:00

예술-복지 공헌 이명석 선생 유해 31년만에 고향으로




“오늘 추모식은 개인의 공덕을 단순히 기리는 차원을 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소유한 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데 깊은 뜻이 있다고 봅니다.”

경북 포항지역 문화예술과 사회복지의 싹을 틔운 재생 이명석 선생(1904∼1979)을 기리는 행사가 2일 포항시 수도산 덕수공원에서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와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대환 포항문인협회장(52)은 재생의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온 뜻을 이렇게 설명했다.

재생은 광복과 6·25전쟁 전후 포항의 문화예술과 사회복지를 개척한 뒤 미국에서 별세했다. 유족들은 최근 그의 유해를 31년 만에 고향에 모셨다. 영덕 출신인 재생은 당시 기초교육기관인 애린공민학교를 비롯해 나환자촌 포항애도원, 부랑자 정착촌 포항신생원을 설립했다. 전쟁 이후에는 아동복지시설 선린애육원과 포항문화원 등을 설립하고 포항항 개항제라는 문화제를 열었다. ‘포항시민의 노래’도 그의 작품이다. 포항지역 문인들은 재생이 자주 다니던 수도산에 1998년 문화공덕비를 세웠다.

재생의 이 같은 노력은 자식들에게도 대물림됐다. 올해 작고한 장남 이진우 변호사는 포항중고교 교가를 만들고 사회복지와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 셋째인 이대공 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69)은 1998년 사재 30억 원가량을 출연해 애린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그동안 포항의 사회복지와 문예 진흥을 위해 19억 원을 지원했다.

재생과의 인연으로 문화예술인으로 성장한 경우도 많다. 김삼일 포항시립극단 상임연출자(68)는 “오래전 덕수동 포항문화원 옆 길거리에서 연극연습을 하다 선생님 눈에 띄어 지금껏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고 회고했다. 포항 문화예술인들은 재생의 글과 사진, 재생 백일장 작품 등을 담은 추모집을 다음 달 펴낼 예정이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