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작은 구멍이 보이지? 자세히 보면 나방이 지금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보일 걸세. 자신의 두꺼운 보호막을 뚫고 나오려고 애쓰는 중이지. 이 칼로 구멍을 조금만 열어주면 나방은 쉽게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 해주면 나방은 너무 약한 상태라서 살아남질 못해. 힘겹게 몸부림치는 과정을 거쳐야 그 나방은 강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일세.”
찰리가 그토록 원하던 마약봉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이며 존은 덧붙인다. “이것을 돌려달라고 나를 찾아온 것이 이번이 두 번째일세. 다음에 다시 한 번 찾아오면 그때는 돌려주겠네.” 할 말을 잃고 돌아서는 찰리는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에 찰리는 혼자 힘으로 마약중독을 극복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그 마약봉지를 바다에 던져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라면 일정한 시기에 이르러 혼자 힘으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될 원리를 주위에서 자꾸만 미리 알려주면 그것은 발버둥치는 나방을 도와주려고 고치에 칼집을 내주는 행위와 무엇이 다를까? 족집게 과외는 우수한 고교 3학년생에게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 깨닫기까지 수험생으로선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할 모든 정교한 노하우를 미리미리 알려주는데 어찌 성적이 오르지 않겠는가?
이러한 단기적인 효과는 혼자 힘으로 공부해야 하는 대학교 및 대학원 과정에서부터 대단히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걸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지적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한 젊은이들이 정작 중요한 시기에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약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서양의 교육제도를 수용해서 문제가 생겼다면 교육에 대한 서양인의 근본적인 생각까지도 이제는 찬찬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세창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