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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컴맹’ 떼준 구청서 ‘컴맹’ 가르치래요

입력 | 2010-06-30 03:00:00

■ 강남구 ‘눈높이 정보교육’ 현장

퇴직 어르신-전업주부 6개월 수업뒤 강사 시험
컴맹 극복 경험 살린 교육…주민들도 “귀에 쏙쏙” 환영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2문화센터 정보화교육장에서 강사 김성기 씨(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수강생들에게 컴퓨터 활 용법을 강의하고 있다. 강남구에서 정보화교육을 받은 뒤 ‘구민강사’로 나선 김 씨는 “내가 컴퓨터를 모를 때 심정을 되살려 수강생 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강남구

“자, 방금 저장한 문서파일을 압축 프로그램으로 압축하면…. 파일 크기(용량)가 줄어들었죠?”

29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2문화센터 정보화교육장. 강사로 나선 김성기 씨(72)가 파일을 압축하는 방법을 강의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림(아이콘) 크기가 똑같은데요?” “그러면 문서파일에 쓴 글씨가 작아지는 건가요?” 컴퓨터 강사에게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는 질문이지만 김 씨는 다시 ‘파일 압축’ 개념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의를 담당하는 김 씨 역시 강남구에서 정보화교육을 받고 ‘컴맹’ 탈출에 성공한 ‘구민 강사’다.

○ 초심(初心)으로 가르쳐

‘구민 강사’는 강남구에서 정보화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일부에게 강사 교육을 실시한 뒤 구민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국화선 강남구 정보화교육팀장은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나 강의 노하우는 전문 강사보다 떨어지지만 컴퓨터가 생소한 사람들에겐 오히려 더 쉽고 자세한 강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 김 씨는 수강생들에게 컴퓨터 용어의 개념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폴더’는 파일을 담는 그릇이고 ‘파일’은 보고 싶은 내용이 담긴 물건이라고 비유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내가 저장한 ‘물건’을 찾아보려면 먼저 그게 어느 ‘그릇’에 담겨 있는지 알아야 되겠죠.” 수강생들은 강의를 들으며 특정 폴더에 파일을 저장하고 찾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컴맹’을 극복한 구민강사는 주민들에게도 환영받고 있다. 강의를 듣던 한상수 씨(73)는 “‘이것도 모르냐’며 핀잔 들을까 봐 일반 강사에게는 묻지 못할 내용도 구민강사에게는 자신 있게 질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화교육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나 전업주부라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구민강사 역시 퇴직한 노인이나 전업주부가 대부분이어서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다. 수강료가 전문강사 강의의 절반인 월 7500원이라는 것도 주민들의 호감도를 높이는 점이다.

○ 6개월 교육받고 시험도 통과해야

구민강사가 되려면 강남구에서 마련한 교육을 이수하고 시험에도 합격해야 한다. 교육 과정은 총 6개월로 만만치 않다. 지원하면 먼저 컴퓨터 이론과 활용 능력, 교수법 등에 대해 3개월간 수업을 받아야 한다. 이후 3개월간은 ‘보조강사’ 생활이 이어진다. 전문강사의 강의를 보조하고 준비하는 등 수업 진행을 도우면서 틈틈이 구청 담당 직원들 앞에서 강의 리허설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필기, 실기, 인성검사 등으로 이뤄진 ‘최종 테스트’를 통과해야 구민강사로 설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도 지난해 처음으로 ‘제1기 구민강사’를 선발할 땐 지원자가 60명에 이르렀다. 각종 시험을 거쳐 최종 선발된 구민강사는 10명. 김 씨도 그중 한 명이다. 퇴임 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로 재직했다는 김 씨는 “교수 신분일 때는 조교들이 필요한 전산 업무를 돌봐줬는데 퇴임하고 나니 혼자 컴퓨터를 쓰기가 어렵더라”며 “나 같은 초보자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컴퓨터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구민강사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강남구 측은 “구민강사 대부분이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1기 운영 결과를 분석해 단점을 보완하고 조만간 2기 구민강사 선발 계획을 세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