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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차범근 뒤바뀐 인생

입력 | 2010-06-11 22:17:46


허정무 감독(왼쪽)-차범근 감독. 동아일보 자료사진

12년 전 프랑스. 한 사람은 그라운드 위에서 태극전사를 지휘했고 다른 한 사람은 중계석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2010년 남아공에서는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 축구 최고의 라이벌 차범근 해설위원과 허정무 감독 얘기다.

두 사람은 실제로 동갑이지만 호적상 허 감독(1955년 생)이 차 감독(1953년 생)보다 두 살 아래다. 호적 나이대로 차 위원이 2년 앞서 고려대에 진학했고, 허 감독은 2년 뒤 사학 라이벌 연세대 유니폼을 입었다. 차 위원은 공군에서, 허 감독은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차 위원은 1979년 '독일 진출 1호 선수'로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열었고 허 감독은 이듬해 '네덜란드 진출 1호 선수'가 됐다.

소속 팀은 달랐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대표팀에서는 한솥밥을 먹었다. 한국이 32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각기 다른 프로 팀 감독을 맡아 다시 대결 구도를 이어갔다.

대표팀 선수로는 함께 뛸 수 있었지만 대표팀 감독은 그럴 수 없는 자리. 먼저 기회를 잡은 쪽은 차 위원이었다.

축구 팬들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 속에 1997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차 위원은 그해 9월 일본과의 경기에서 짜릿한 2-1 역전승으로 '도쿄 대첩'을 거두는 등 조 1위로 가볍게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선취골을 넣고도 멕시코에 1-3으로 졌고, 2차전에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에 0-5로 완패했다. 차 위원은 악화된 여론을 버티지 못하고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중 경질이라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해 10월 한동안 대행 체제였던 대표팀을 새로 맡은 인물은 허 감독이었다. 그러나 차 위원도, 허 감독도 2002년, 2006년 월드컵에서는 그라운드에 나가지 못했다. 월드컵 사상 첫 승리, 첫 4강, 첫 원정 승리의 영광은 모두 외국인 감독이 안았다.

대표팀이 12일 그리스를 꺾으면 허 감독은 국내파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한 사령탑이 된다. 허정무호에는 차두리(푸라이부르크)가 뛰고 있다. 아버지로서 차 위원은 누구보다 아들의 승리를 기원할 것이다. 1998년 두 사람의 관계는 어색했다. 이번에는 함께 웃을 수 있을까.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