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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전사 라이프 스토리 ④ 안정환] 축구로 배고픔 달래던 정환…아직도 골이 고프다

입력 | 2010-05-29 07:00:00

안정환. [스포츠동아 DB]


축구 시작 - 빵·우유·라면 마음껏 먹고 싶어서
월드컵 - 골 현재 3골…한골만 더하면 亞 최다
대학시절 - “머리깎기 싫다” 팀 무단이탈 방황
풍운아 - 2002 伊전 골 넣고 페루자서 쫓겨나
              일본 등 해외 떠돌이…‘저니맨’ 별칭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연장 골든골의 주인공.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서 한국축구 사상 첫 원정 월드컵 승리의 해결사.

바로 안정환(34·다롄 스더)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그가 골을 추가한다면(현재 3골) 아시아선수로는 역대 월드컵 최다골을 기록한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탈만큼 안정환은 한국축구 최고의 스타다. 축구기량뿐 아니라 잘 생긴 외모로 여성 팬들을 몰고 다닌다. 10년 이상 최고 자리를 지켜온 안정환이지만 그의 축구인생은 모두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배고픔에 시작한 축구


그는 어린시절 단지 먹을 것을 위해 축구를 시작했다. 당시 축구부는 지원이 풍부했다. 빵과 우유, 라면 등 식사 이외에도 다양한 간식이 제공됐다. 안정환의 측근은 “정환이로부터 어렸을 때 축구를 하면 끓인 라면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또 그의 대학교 동기는 “어렸을 때 정환이의 사정은 잘 모르겠다. 다만 대학교 때 간혹 정환이가 버터에 김치를 볶아 주면서 ‘어릴 때 이렇게 해서 밥을 자주 먹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직접 음식을 해 먹어야 했던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잘생긴 외모로 주목을 받았다. 외탁 덕분이었던 같다. 대우시절 안정환과 함께 했던 김석현 인천 부장단은 “안정환의 외가 친척 분들 가운데 미인과 미남이 많았다. 정환이가 외탁을 해서 외모가 출중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축구실력과 탤런트 뺨치는 외모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방황으로 시작한 대학생활

그는 아주대 1학년 때부터 경기를 뛰었다. 이미 서울공고 시절부터 기량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났던 안정환은 아주대 입학과 동시에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그라운드에 나서 동기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에게도 방황의 시기는 있었다. 1학년들이 단체로 머리를 깎일 위기에 놓이자 그를 포함한 신입생들은 이른바 ‘소풍’을 떠났다. ‘소풍’은 팀 무단이탈을 의미한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팀에 복귀했고,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야만 했단다. 워낙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팀을 잠시 떠났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다는 게 대학 동기들의 증언이다.

그는 3학년이 되면서부터 최고의 길을 걸었다. 각종 대회에서 팀을 우승시키며 1997년 국가대표로 선발돼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부산 대우에 입단한 98년엔 프랑스월드컵 멤버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이듬해인 1999년 이동국, 고종수와 함께 K리그 3인방으로 불리며 재도약했다. 팀에서는 안정환을 최고 스타로 만들기 위해 방송 노출을 극대화했고, CF도 여러 편 찍었다.

이 때 지금의 부인 이혜원씨를 처음 만났다. 미스 휠라였다. 휠라는 당시 부산 대우의 후원을 맡았다.

둘은 CF에 동시에 출연하게 되며 인연을 맺었고, 결혼까지 골인했다.

안정환. [스포츠동아 DB]


○이탈리아를 떠나게 된 2002년 골든골

부산에서 활약하던 안정환은 계약 사항에 따라 해외진출을 노렸지만 잡음이 발생했다.

부산 대우를 인수한 현대산업개발은 안정환을 팀에 남겨두려 했다. 하지만 안정환은 대우 입단 당시 2년 뒤 해외진출을 보장한다는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때문에 안정환은 팀과 마찰을 빚었다.

결국 2000년 이탈리아 페루자와 계약을 맺고 해외로 떠났다. 이탈리아에서도 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축 공격수로 뛰었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났다. 페널티킥을 실축해 선제골의 기회를 날린 그는 1-1이던 연장 후반 12분 극적인 헤딩 골든골로 이탈리아에 탈락의 아픔을 안겼다.

하지만 그 골로 그는 이탈리아를 떠나야만 했다.

월드컵 직후 안정환은 페루자로 돌아갔지만 팬들에게 시달려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안정환의 차를 이탈리아 팬들이 부셔버릴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때문에 안정환은 이탈리아를 떠나 일본에 둥지를 틀었다.

그 후 많은 팀을 옮겨 다니며 ‘저니맨’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보이는 것과 달리 마음이 따뜻한 남자

그는 유명세만큼이나 많이 시달렸다. 그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대거 등장했다. 언론의 관심도 매우 컸다. 그러면서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주변인들의 설명. 때문에 ‘까칠하다’는 등 선입견에 시달렸고, ‘안티 팬’도 늘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말은 없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게 그를 잘 아는 축구 관계자들이나 친구들의 전언이다.

해외생활을 오래해서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나지만 한국에 들어오면 항상 연락해서 선후배들과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럴 때면 계산은 안정환의 몫.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내가 한 턱 쏜다’는 말을 즐겨한다고.

결혼 이후에는 애처가로 변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아내가 하는 사업도 거든다. 최근에는 아내가 새롭게 개업하는 행사장에 나와 든든한 후원자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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