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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구자룡]‘김정일 방중’ 中도 北도 쉬쉬… 언제까지 이럴건가

입력 | 2010-05-08 03:00:00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이튿날인 4일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을 확인해 달라는 질문에 “현재까지 여러분에게 제공할 새로운 정보가 없다”고 답변했다. 이때는 이미 전날 김 위원장이 탄 특별열차가 랴오닝(遼寧) 성단둥(丹東)에서 포착되고 오후에는 다롄(大連)에서 투숙하는 호텔을 드나드는 장면이 방송 카메라에 잡혀 세계에 보도된 뒤였다. 북한의 요청에 따른 것이거나 동맹국을 고려한 것이라 해도 대변인 스스로도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터를 전격 방문해 장병들을 위로하는 것과 같은 위험한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길이 줄곧 이번처럼 잠행(潛行)을 해야 할 정도로 안전에 자신이 없다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 국가의 정상을 자처하면서 마치 무슨 죄인처럼 숨어 다니며 동선을 감추는 김 위원장이나 이번으로 다섯 번씩 되풀이해 ‘특별 의전’을 베푸는 중국을 전 세계는 어떻게 이해할까 궁금하다.

김 위원장이 5일 승용차를 타고 톈진(天津)에서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후에는 중심가인 창안제(長安街)를 차량 30여 대가 퍼레이드를 하듯 지나갔다. 상당 시간 교통통제가 이뤄져 많은 베이징 시민들이 김 위원장의 방중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모든 TV와 신문은 단 한마디, 단 한 줄도 김 위원장의 방중이나 베이징 입성을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의 자유는 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세계를 중국에 알린다는 뜻으로 ‘글로벌 ○○○’라는 이름까지 붙은 대표적인 관영 언론이 “한국과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중국에 왔다고 한다”고 보도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까지 든다.

관영 신화통신은 1일부터 세계를 대상으로 ‘중국판 CNN 방송’으로도 불리는 영어 시험방송을 시작했으며 7월 1일부터 정식으로 방송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 방중 보도를 보면 뉴스의 신뢰성에조차 의문이 간다.

상하이(上海)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세계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중국은 세계 경제 2위 대국 자리를 놓고 일본과 경쟁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아직도 김 위원장의 잠행과 언론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